잘 알려진 대로 미국 실리콘밸리는 정보기술(IT) 및 전자산업의 산실이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인텔 등 세계적 IT기업이 이곳에서 성장했다.

이런 실리콘밸리에 최근 별칭 하나가 더 붙었다. ‘모터시티’가 그것이다. 미국의 모터시티는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내로라하는 자동차업체가 몰려 있는 디트로이트다. 이 도시의 별칭이 실리콘밸리로 옮겨간 것은 전기자동차업체 테슬라의 비약적 성장 덕분이다. 실리콘밸리에 뿌리를 둔 테슬라는 지난 10일 뉴욕증시에서 GM을 제치고 시가총액 최대 자동차업체로 등극했다. 미국 언론들은 ‘실리콘밸리가 모터시티로 거듭났다’며 흥분했다.

쏟아지는 4차 산업혁명 공약

실리콘밸리가 IT는 물론 자동차산업까지 점령한 비결은 무엇일까. 답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인구의 37%가 외국 출생일 정도로 끝없이 몰려드는 유능한 이민자들, 젊고 열정적인 창업자들의 넘치는 아이디어, 1만4529개(작년 말 현재) 스타트업의 자양분 역할을 하는 풍부한 벤처캐피털, 캘리포니아주의 파격적인 기업유인정책 등. 이러다 보니 미국은 인공지능(AI) 로봇 자율주행차 사물인터넷(IoT) 등을 다루는 4차 산업혁명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조기 대선이 한창인 국내에서도 4차 산업혁명은 주된 이슈다. 주요 대선후보들은 입만 열면 4차 산업혁명을 외친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느니, 20조원 펀드를 만들겠다느니, 중소기업청을 창업중소기업부나 중소벤처기업부로 승격시키겠다느니 공약도 화려하다.

이른바 ‘삼디(3D)와 오지(5G)’ 해프닝도 이런 와중에 나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지난달 30일 경선 토론회에서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읽었다. 그러자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등이 이를 비판했다.

그쪽을 좀 아는 사람들은 3D 프린터를 ‘스리디 프린터’라고 말한다. 따라서 삼디 프린터로 읽은 문 후보는 이 분야에 대해 뭘 모른다는 비아냥이 깔려 있다. 문 후보는 지난 11일 가계통신비 부담 절감 정책을 발표하면서 5세대 이동통신을 나타내는 ‘5G(파이브지)’를 ‘오지’라고 읽었다. 다분히 의도적인 것으로, 삼디 해프닝에 대한 반격이었다.

4차 산업혁명 본질이나 아는지

문 후보의 말마따나 3D 프린터를 ‘스리디’로 읽든, ‘삼디’로 읽든, ‘셋디’로 읽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 개념과 필요성을 정말 잘 알고 있는지 여부다. 넓게는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과 부작용을 절감하고 있는지 여부다.

4차 산업혁명이 화두가 된 것은 작년 초 다보스포럼에서다. 클라우스 슈바프 다보스포럼 회장은 2020년까지 AI와 로봇의 영향으로 일자리 710만개가 소멸되고 200만개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런데도 대선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의 화려함만 강조한다.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면서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장밋빛 공약만 나열한다. 일자리 축소에 대한 우려를 어떻게 불식시킬 것인지, 실리콘밸리 같은 창업생태계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는 후보는 없다.

그러다 보니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사탕발림으로 4차 산업혁명을 내세우는 게 아니냐는 비아냥도 나온다. 이런 비아냥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줄 사람이 다음 대통령으로 뽑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한 19대 대선 공식선거운동 첫날이다.

하영춘 편집국 부국장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