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통령 선거 D-22 특별 사설] '저력의 대한민국' 되살리기, 유권자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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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근본체질 쇄신할 '결정적 선거'
'미인투표·충동투표'는 민주주의 훼절행위
정치수준은 결국 유권자가 결정한다
퍼주기 · 말잔치보다 책임지는 국가 CEO 선출, 시대적 사명이다
'미인투표·충동투표'는 민주주의 훼절행위
정치수준은 결국 유권자가 결정한다
퍼주기 · 말잔치보다 책임지는 국가 CEO 선출, 시대적 사명이다
‘결정적 선거(critical election)’라는 말이 있다. 기존 정치적 쟁점과 지역적 권력기반, 정당의 전통적 이념 토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물갈이를 하는 선거를 말한다. 미국 정치학자 월터 버넘이 “미국에서는 가끔 선거혁명이 일어나 정치와 사회의 기본체질을 결정적으로 쇄신한다”며 도입한 용어다. 1960년 존 F 케네디, 1980년 로널드 레이건, 2008년 버락 오바마, 2016년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에 당선시킨 선거가 전형적인 예다.
17일부터 공식 선거운동에 들어가는 대한민국 19대 대통령 선거는 여러 면에서 국가의 새로운 진운(進運)을 가름할 ‘결정적 선거’다. 새 대통령은 탄핵사태로 인한 국가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일이 급선무다. 갈라지고 흩어진 민심을 수습해 국력(國力)을 결집해야 하는 사명도 막중하다. 북한의 핵(核)도발 위협을 잠재우고 국가안보를 튼실하게 다져나갈 리더십은 필수다. 저성장이 장기화되면서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경제를 추슬러 새로운 도약을 이끌 비전과 추진력도 보여줘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국가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선거가 22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표심(票心)’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전 선거에 비해 여러 상황이 달라진 탓이다. 보수와 진보 후보 간 대결 구도가 분명하던 역대 대선과 달리 이번 선거는 진보 후보들 간 대세몰이 경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두 동강 난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좀처럼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보수층 유권자 상당수가 진보정당 후보들을 놓고 투표를 저울질하는 상황을 맞았다. 보수 후보들에게는 굴욕적이게도 “사표(死票)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덜 나쁜(次惡) 후보자’를 선택해야 할지, 아예 선거를 포기할지를 고민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는 출신지역에서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한 지역맹주(盟主)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대표적 고질로 꼽히던 지역주의를 타개하고, 지역을 떠나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
유권자의 각성이 중요하다. 딱 부러지게 마음에 드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주권 행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주요 후보들의 핵심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최적의 국가CEO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선거에서의 ‘주권 포기’가 본인은 물론 사회 전체에 얼마나 황당한 손실과 타격을 가하는지는 역대 교육감 선거가 웅변해준다. 서울 부산 등 대부분 지역 교육감 선거 투표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한 자릿수 지지율의 교육감’이 지방 교육자치를 왜곡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유권자들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투표장에 가서 주권을 행사하되,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후보의 국정철학과 정견, 국가경영 청사진과 이행 방안은 물론 측근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지도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
단순히 후보의 인물과 이미지만을 보고 표를 주는 ‘미인투표’, 주위 눈치를 살펴서 투표하는 ‘대세 추종’, 맹목적 감정의 지배를 받는 ‘충동투표’ 등은 ‘투표를 하지 않느니보다 못한’ 민주주의 훼절행위다.
신중하지 않게 투표하고는 “사람을 잘못 봤다”며 가슴 치고 후회한들 소용없다. 투표를 포기하거나 잘못된 후보를 선택한 결과가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독일은 1932년 총선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나치)을 제1당으로 만들었고, 이듬해 국민투표에서는 90%에 가까운 찬성률로 히틀러 총리가 대통령을 겸하도록 허용했다. 당시 독일인이 히틀러에게 몰표를 던진 상황을 프랑스 작가 디디에 데냉크스가 지은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는 이렇게 전한다. “여보, 잘 생각해 봐. 히틀러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니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히틀러를 뽑아야 해. 그가 독일 국민 모두에게 일자리를 줄 거라니까. 그래야 우리가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테고.”
선거일까지 3주 남짓한 기간에 각 당과 후보들의 유세 경쟁이 요란하게 펼쳐질 것이다. 후보마다 온갖 선의(善意)와 미사여구로 포장한 공약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국방과 안보는 걱정할 것 없고, 넉넉한 일자리로 청년들의 한숨과 눈물을 씻어줄 것이며, 중소기업 및 영세상공인과 결손가정 등 사회 취약계층이 함박웃음 짓는 세상이 찾아올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땀 흘리는 노력과 고통 분담 없는 수확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 4대 대통령은 “좋은 정부(지도자)는 국민행복이라는 정부 목적에 충실해야 하며, 그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막스 베버는 인간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하고, 정치인은 객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점검한 뒤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는 ‘책임윤리’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열된 국론을 모으고, 만연한 무력감과 패배의식을 떨쳐내고 국력을 결집해 대한민국의 힘찬 재도약을 실효성 있게 끌고나갈 국가CEO를 선출하는 것은 유권자의 책임이자 시대적인 사명이다. 앞으로 22일,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지을 ‘골든타임’이다.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
이처럼 중요한 국가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선거가 22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표심(票心)’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많다.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전 선거에 비해 여러 상황이 달라진 탓이다. 보수와 진보 후보 간 대결 구도가 분명하던 역대 대선과 달리 이번 선거는 진보 후보들 간 대세몰이 경쟁으로 바뀌었다.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두 동강 난 보수정당의 후보들은 좀처럼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보수층 유권자 상당수가 진보정당 후보들을 놓고 투표를 저울질하는 상황을 맞았다. 보수 후보들에게는 굴욕적이게도 “사표(死票)를 막아야 한다”는 얘기가 공공연하다. ‘덜 나쁜(次惡) 후보자’를 선택해야 할지, 아예 선거를 포기할지를 고민한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번 선거에서는 출신지역에서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한 지역맹주(盟主)가 보이지 않는다. 한국 정치의 대표적 고질로 꼽히던 지역주의를 타개하고, 지역을 떠나 대한민국 전체를 위해 일할 사람을 뽑을 절호의 기회가 왔다.
유권자의 각성이 중요하다. 딱 부러지게 마음에 드는 후보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주권 행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주요 후보들의 핵심 공약을 꼼꼼하게 살펴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그래야 최적의 국가CEO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선거에서의 ‘주권 포기’가 본인은 물론 사회 전체에 얼마나 황당한 손실과 타격을 가하는지는 역대 교육감 선거가 웅변해준다. 서울 부산 등 대부분 지역 교육감 선거 투표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면서, ‘한 자릿수 지지율의 교육감’이 지방 교육자치를 왜곡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은 그 나라 유권자들이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투표장에 가서 주권을 행사하되, 어떤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인지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후보의 국정철학과 정견, 국가경영 청사진과 이행 방안은 물론 측근에 어떤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지도 엄정하게 살펴야 한다.
단순히 후보의 인물과 이미지만을 보고 표를 주는 ‘미인투표’, 주위 눈치를 살펴서 투표하는 ‘대세 추종’, 맹목적 감정의 지배를 받는 ‘충동투표’ 등은 ‘투표를 하지 않느니보다 못한’ 민주주의 훼절행위다.
신중하지 않게 투표하고는 “사람을 잘못 봤다”며 가슴 치고 후회한들 소용없다. 투표를 포기하거나 잘못된 후보를 선택한 결과가 재앙적인 결과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다. 독일은 1932년 총선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나치)을 제1당으로 만들었고, 이듬해 국민투표에서는 90%에 가까운 찬성률로 히틀러 총리가 대통령을 겸하도록 허용했다. 당시 독일인이 히틀러에게 몰표를 던진 상황을 프랑스 작가 디디에 데냉크스가 지은 《아빠, 왜 히틀러한테 투표했어요?》는 이렇게 전한다. “여보, 잘 생각해 봐. 히틀러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니까.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반드시 히틀러를 뽑아야 해. 그가 독일 국민 모두에게 일자리를 줄 거라니까. 그래야 우리가 조국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을 테고.”
선거일까지 3주 남짓한 기간에 각 당과 후보들의 유세 경쟁이 요란하게 펼쳐질 것이다. 후보마다 온갖 선의(善意)와 미사여구로 포장한 공약과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국방과 안보는 걱정할 것 없고, 넉넉한 일자리로 청년들의 한숨과 눈물을 씻어줄 것이며, 중소기업 및 영세상공인과 결손가정 등 사회 취약계층이 함박웃음 짓는 세상이 찾아올 것만 같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땀 흘리는 노력과 고통 분담 없는 수확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제임스 매디슨 4대 대통령은 “좋은 정부(지도자)는 국민행복이라는 정부 목적에 충실해야 하며, 그 목적을 가장 잘 달성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막스 베버는 인간의 윤리를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로 구분하고, 정치인은 객관적 현실을 냉철하게 점검한 뒤 행동의 결과를 책임지는 ‘책임윤리’를 수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분열된 국론을 모으고, 만연한 무력감과 패배의식을 떨쳐내고 국력을 결집해 대한민국의 힘찬 재도약을 실효성 있게 끌고나갈 국가CEO를 선출하는 것은 유권자의 책임이자 시대적인 사명이다. 앞으로 22일, 대한민국의 명운을 결정지을 ‘골든타임’이다. 모두가 역사의 주인공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