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잠에서 깨어난 ‘괴물’ 류현진이 8일(한국시간) 새벽 5시 복귀전을 치른다. 류현진은 이날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열리는 LA 다저스의 콜로라도 로키스 원정경기에 선발등판한다.
류현진의 등판은 지난해 7월 8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 이후 274일 만이다. 마지막 승리는 950일 전인 2014년 9월 1일이다. 누구보다 1승에 목마른 류현진이지만 승리보다 급한 게 있다. ‘건강한 류현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복귀전은 두 번의 수술과 2년에 걸친 재활이 성공적이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무대다.
◆ 관절와순 수술 후 복귀 11명뿐
류현진은 2015년 5월 프로 데뷔 후 처음으로 수술대 위에 올랐다. 왼쪽 어깨와 팔을 잡아주는 관절와순이 파열돼 이를 꿰맸다. 다시 돌아오기 힘들 것이란 말이 나왔을 만큼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관절와순 수술은 투수들의 가장 흔한 커리어 엔딩 시나리오 중에 하나기 때문이다.
2012년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의 칼럼니스트 제이 제프가 관절와순 수술을 받은 메이저리그(MLB) 투수 67명의 기록을 조사한 결과 수술 이후 1000이닝 이상을 던진 선수의 비율은 7.4%에 불과했다. 2002년부터 2012년까지 로저 클레멘스, 커트 실링, 알 라이터, 크리스 카펜터, 길 메시 등 5명만 완전한 재기에 성공했다. 모두 MLB 전설 반열에 오른 선수들이다. 하지만 약물 복용 의혹을 받고 있는 클레멘스를 제외하면 이 비율은 5.9%(4명)로 내려간다.
400이닝 이상을 던진 투수는 이들을 포함해 11명에 머물렀다. MLB에서 시즌 평균 170이닝을 소화한 류현진이 앞으로 2년 동안 더 공을 던질 수 있는 확률은 16.4%인 것이다. 제프의 조사에서 전체의 29%인 20명은 아예 MLB로 복귀하지도 못했다.
◆ 관건은 스트라이크존 활용
바늘구멍 생존율이지만 류현진은 재활에 매진했다. 올해 시범경기에 4차례 등판해 평균자책점 2.57(14이닝 4자책점)을 기록하며 재기의 신호탄을 쐈다.
류현진의 시범경기 최고구속은 시속 92마일(148km)이다. 부상 직전인 2014년 직구 평균구속(시속 146km)을 조금 웃도는 수준이다. 복귀 첫 시즌을 치르는 류현진이 정규시즌에서 무리해 구속을 끌어올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선수 시절 류현진과 한화 이글스에서 한솥밥을 먹은 동료이자 그를 지도한 코치였던 정민철 MBC 해설위원은 “MLB 진출 이후 류현진의 경기 성적은 구속과 비례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올해는 전성기만큼의 구속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기존처럼 스트라이크존을 빠르게 공략하기보단 유인구 비율을 늘려 타자를 맞춰 잡는 피칭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류현진의 주무기인 서클체인지업 부활이 절실하다. MLB 진출 첫해 류현진의 서클체인지업 피안타율은 0.164에 불과했지만 2015년 0.318로 2배 올랐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류현진은 체인지업 구사 비율을 줄이고(22.3%→18.8%) 슬라이더 구사 비율을 높였다(13.9%→15.8%). 하지만 최고구속 시속 145km에 달하는 고속 슬라이더는 몸에 무리를 가져왔고 결국 독이 돼 돌아왔다.
정 위원은 “새로운 구종을 장착한다는 건 그만큼 투수에게 부담이 따르는 일”이라면서 “KBO리그에서처럼 같은 코스에 같은 구종을 다른 속도로 던지는 다변화를 꾀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 ‘무덤’에서 부활
류현진의 복귀전이 열리는 쿠어스필드는 ‘투수들의 무덤’이란 이름으로도 유명하다. 공기 밀도가 낮은 해발 1609m의 고지대에 위치해 타구가 멀리 뻗기 때문이다. 지난해 쿠어스필드에서 치러진 경기 평균 득점은 6.08점으로 MLB 30개 구장 가운데 가장 높다. 투수들의 평균자책점도 5.81로 최고를 기록했다.
2005년부터 2006년까지 쿠어스필드를 홈으로 쓰던 김선우 해설위원은 “투수인 나도 타석에 들어서면 홈런을 노리던 곳”이라며 “변화구가 먹히지 않아 힘들어 하는 투수들이 많지만 서클체인지업이 주무기인 류현진은 오히려 유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인 변화구는 손가락으로 공의 실밥을 강하게 채면서 공기 마찰을 늘릴수록 위력이 늘어나지만 손에서 빠지듯 던지는 체인지업은 공의 회전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김 위원은 “몸에 힘이 빠질까봐 쿠어스필드에 올라가서는 연습을 하지 않는 선수들도 많이 있다”면서 “특히 투수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많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탈수를 막는 것도 적응을 위한 한 가지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류현진은 MLB 통산 콜로라도전에 5차례 등판해 3승 2패 평균자책점 4.00(27이닝 12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4경기에서 홈런을 하나씩 허용했다. 쿠어스필드 원정엔 한 차례 등판해 6이닝 8피안타(1피홈런) 2자책점 2탈삼진 2볼넷으로 승리를 따냈다.
전형진 한경닷컴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