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국민의당을 마지막으로 원내교섭단체 네 곳이 대통령선거 후보를 확정했다. 대선이 30여일밖에 남지 않았고 후보도 많은데 공약집을 내놓은 캠프는 한 곳도 없다. 후보들은 당내 경선 과정에서 TV토론 등에 출연해 각종 공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공약집이 없다 보니 공약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행하겠다는 것인지, 재원은 어떻게 마련하겠다는 건지 유권자로서는 알 길이 없다. 언론이 캠프에 이것저것 물어봐도 “지금 공약을 만드는 중이라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답이 돌아온다.

미국에선 늦어도 대선 두 달 전에는 공약집이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오는 23일 대선을 치르는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국민전선) 등 유력 후보가 2월 초에 공약집을 내놨다.

국내에서는 대선을 치를수록 공약집 발간이 늦어지고 있다. 2002년 대선 때에는 노무현·이회창 후보가 대선 한 달 전에 공약집을 냈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정동영 후보가 공약집을 발간한 것은 대선 2주 전쯤이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각각 선거 9일과 10일 전에야 공약집을 내놨다.

사실상 양자 대결로 치러진 지난 대선과 달리 이번 대선은 5자 대결 구도라 유권자들이 공약을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 캠프에서는 “대통령 탄핵으로 갑작스럽게 선거가 치러져 준비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동안 후보들이 경선 과정에서 내놓은 공약들은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채 졸속으로 내놓았다는 얘기가 된다.

몇몇 후보가 단일화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 이후 공약집을 내놓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유권자를 상대로 여론조사를 할 가능성이 높다. 유권자들은 공약도 모르고 단일화 여론조사에 참여하게 될지도 모른다.

후보들은 “정책 선거를 하겠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유권자들은 그들이 말하는 정책이 무엇이고, 어떻게 경제를 살리겠다는 건지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