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탄소배출권을 거래시장에 팔지 않고 쟁여두는 기업에 정부가 내년부터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배출권 공급을 늘려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다. 배출권 수요가 많은 발전회사와 석유화학, 시멘트업체 등의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정부는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배출권 거래시장 안정화방안’을 발표했다. 배출권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기업에 부여한 것이다. 기업별로 일정량을 할당받는다. 배출량이 할당량보다 많으면 거래시장에서 다른 기업의 배출권을 사야 한다.

정부는 배출권을 과도하게 이월하면 내년도 할당량을 줄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허용하던 ‘무제한 이월’을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1차 배출권 거래제 기본계획 기간(2015~2017년) 연평균 할당량의 10%에 2만t을 더한 양을 초과해 이월하면, 초과분만큼 2차 기본계획 기간(2018~2020년) 할당량을 줄이는 방식이 유력하다. 배출권을 이월하는 것보다 매도하는 게 이익이 되는 구조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4000만~5000만t 정도의 배출권이 시장에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배출권 이월 제한’이란 초강수 없이는 배출권 거래시장의 수급 안정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현재 배출권 거래시장에서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 남는 배출권을 기업들이 팔지 않고 쌓아두고 있어서다. ‘무제한 이월’이 가능해서다. 기획재정부가 2015년 배출권을 정산한 결과 522개 할당 대상 기업 중 283곳이 총 1550만t 규모의 여유 배출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88%인 1360만t은 다음해로 이월됐다.

◆수급 불일치 해소 시급

배출권 구매 수요는 꾸준하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할당량보다 많아 배출권을 구매해야 하는 기업이 적지 않다. 구매한 배출권은 정부에 내야 한다. 제출하지 못하면 부족분 가격의 세 배를 과징금으로 내야 한다. 2015년 기준 배출권 거래제 대상 기업의 45%인 239개 기업이 총 1840만t의 배출권 부족을 호소했다.

이러다 보니 치열한 ‘매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가격은 가파르게 올랐다. 2016년 배출권 가격은 거래가 본격화된 작년 7월1일 1만7000원에서 지난 2월7일 2만6500원으로 올랐다. 오일영 기재부 기후경제과장은 “배출권 부족 기업은 거액의 과징금을 물게 된다”며 “과징금 납부를 둘러싼 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시장 안정화 조치를 내놓은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이월제한 방안은 오는 6월 확정될 예정이다. 이월제한 조치에도 공급이 늘지 않으면 정부는 예비물량 1430만t을 추가로 유상공급할 계획이다.

◆해외 배출권 국내 거래 허용

정부는 이날 2차 계획기간(2018~2020년) 수급 안정 대책도 내놨다. 배출권 차입 한도는 당초 10%에서 15%로 늘렸다. 연평균 100만t씩 할당받은 기업이 2018년 온실가스 120만t을 배출했다면, 15만t은 2019년 할당량에서 차입할 수 있고 나머지 5만t의 배출권은 시장에서 구입해야 한다. 예전에 비해 5만t만큼의 구입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다만 다음해엔 첫해 차입 비율의 절반만큼만 가져올 수 있다. 예컨대 2018년 15%를 차입했다면 다음해엔 7.5%만 가능하다. 오 과장은 “차입한도를 매년 줄여가지 않으면 계획기간 마지막해에 할당량이 크게 모자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시장활성화 조치도 본격 추진된다. 우선 국내 기업이 해외에서 온실가스를 감축해 얻은 배출권을 국내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된다. 스와프 거래도 가능해진다. 2016년 배출권과 2017년 배출권을 교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정부는 배출권 경매도 매달 할 계획이다. 주식시장처럼 시장조성자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을 시장조성자로 지정하고 의무적으로 호가를 내고 거래하도록 해 거래 활성화를 꾀하겠다는 의도다.

◆할당량 불확실성은 여전

업계 반응은 긍정적이다. 석유화학 시멘트 발전 등 배출권 부족을 겪는 기업은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정부가 기업에 과도한 감축목표를 강제하는 게 배출권 부족 사태의 근본 원인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이 없다는 비판도 나온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에 할당한 배출권은 당초 기업이 요구한 것보다 20% 정도 적다”며 “2차 계획기간엔 더 적게 할당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구체적인 수치는 알 수 없어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최대한 빨리 2차 계획기간의 세부 계획을 공개할 것”이라며 “공청회 등을 통해 업계와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