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서울 신촌 연세대 본관에서 ‘4차 문명혁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위기이자 기회로 봐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연세대 제공
김용학 연세대 총장이 서울 신촌 연세대 본관에서 ‘4차 문명혁명’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그는 “4차 산업혁명은 산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위기이자 기회로 봐야 한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연세대 제공
김용학 연세대 총장(64)은 “대학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관한 질문은 문명사적 위기의 문제”라고 단언했다. 대학이 단편적인 지식만 외우는 인재를 쏟아내던 시대는 지났다는 인식이다. 김 총장은 이를 ‘4차 문명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연세대도 이런 관점에서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올해 6년차인 인천 송도캠퍼스에선 ‘공부와 여가의 병행’이라는 전례 없는 교육실험 중이고 서울캠퍼스는 창업기지로 변모하고 있다. 학생 선발 방식도 획기적으로 바꾸고 있다. 김 총장은 “글 잘 쓰고, 말 잘하고, 깊이 생각하는 인재가 연세대가 원하는 인재상”이라고 강조했다. ‘수시의 수시화’를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연 6회뿐인 수시모집 전형을 대학이 원할 때 ‘수시로’ 하겠다는 계획이다. 서울 신촌 연세대 교정에서 지난 27일 김 총장을 만났다.

▷대학입시 개혁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총장에 취임한 지 1년쯤 됐어요. 해보니까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 일단 대학 내 교육과정부터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다 보니 대학이 바뀌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았어요. 대학 입학 전 공교육이 연세대가 원하는 인재를 길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결국 대입정책을 바꿔 초·중·고교 교육도 변화시켜야 한다는 두 번째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연세대부터 대입제도를 바꾸겠다는 말씀이죠?

“‘수시의 수시화’를 해보려고 합니다. 지금 수시모집 전형은 시기가 정해져 있고, 횟수도 여섯 번뿐이에요. 이걸 대학이 원할 때 아무 때나 하겠다는 겁니다.”

▷비판이 만만치 않을 듯합니다.

“대학을 서열화할 수 있다는 비판도 있어요. 연세대 같은 상위권 대학이 성적 좋은 학생을 싹쓸이할 것이라는 우려죠. 저는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가 다를 것이라고 봅니다.”

▷왜 이런 변화를 추구하나요.

“요즘 4차 산업혁명이란 말 많이 하죠. 지금의 변화는 산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훨씬 크게 봐야 해요. 전례 없는 혁명적인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인류 문명의 기회이자 위기기도 합니다. 과거 산업사회에 적합하게 조직된 대학도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대학이 어떤 인재를 키워야 할까요.

“여태껏 한국은 정답을 잘 찾아내는 인재를 키우는 데 집중했어요. 혹자는 과거 학력고사 시절로 돌아가자는 말도 합니다. 대량 생산, 대량 교육이 필요하던 산업사회에선 적합했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시험문제는 못 풀어도 다른 우수한 능력을 갖춘 아이가 많다는 겁니다. 마구 뛰어놀고 자유롭게 생각을 표현하는 발산적 사고를 키워야 해요. 이것이 입시정책과 대학교육의 핵심이 돼야 하고요.”

▷연세대는 논술을 중시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논술을 전국 대학 중 가장 먼저 채택했어요.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비판도 많이 듣죠. 하지만 저희는 생각이 달라요. 글 잘 쓰고, 말 잘하고, 생각을 깊이 있게 하는 학생을 뽑을 겁니다. 이걸 가장 효과적으로 측정하는 방법이 논술이에요. 또 하나 연세대가 중요시하는 게 공감능력이에요.”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앞으로 창의적인 능력 외에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대체할 겁니다. 결국 ‘컬래버레이션(협업)’ 능력이 중요해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제임스 헤크먼이 수십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고액연봉자의 ‘비결’을 찾아냈어요. 초임은 인지적 능력이 좌우했습니다. 공부 잘하는 이들이 앞선다는 거예요. 그러다 나중엔 ‘소프트 스킬’이 우수한 사람이 성공해요. 남의 말을 잘 듣고, 아파하고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등록금 얘기를 해보죠.

“2011년 반값 등록금 정책 이후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이 지배하고 있어요.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분이 용기를 갖고 새로운 여론을 조성하길 기대할 뿐입니다.”

▷수조원에 달하는 대학 적립금을 깨자는 말도 나옵니다.

“대학 미래를 위한 자금을 당장 써버리자는 건데, 한마디로 씨암탉을 잡아먹으라는 얘기죠. 여러 기금으로 구성된 적립금은 용처가 다 정해져 있어요.”

▷대학도 돈이 있어야 발전할 텐데요.

“연세대 재단의 한 해 예산이 약 4조원입니다. 총장 판공비도 재단이 줍니다. 일부 학생이 등록금으로 판공비 쓴다고 하는데 모르고 하는 소리죠. 앞으로 대학은 세 가지로 나뉠 거예요. 등록금값도 못 하는 대학, 딱 그만큼만 지원해주는 대학, 낸 돈보다 훨씬 많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는 대학으로 말입니다.”

▷요즘 대학들의 글로벌 경쟁이 치열합니다.

“총장 취임하고 나서 연세대가 세계에서 1위 하는 분야가 뭔지 찾아봤습니다. 하나도 없더라고요. 50위권에 드는 학문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전 융합연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도 밟지 않은 길이니까 지금부터 열심히 하면 세계 1등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학문 간 칸막이가 걸림돌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늘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죠. 융합은 연구실이 아니라 대화 속에서 싹튼다고 생각해 한 가지 꾀를 내기도 했습니다. 교수들이 와서 공짜로 커피 마시고 쉴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놨어요. 대학원생에겐 융합팀을 꾸리면 500만원, 1000만원씩 지원비를 주고 있죠.”

▷창업에 대한 생각은 어떻습니까?

“창업은 가장 좋은 교육 중 하나입니다. 학부생은 젊은 만큼 실패할 권리가 있어요. 창업은 일종의 문화이기도 하죠. 위험을 받아들일 수 있는 도전과 같습니다. 학술정보원 도서관 1층을 창업 공간으로 조성했습니다. 700평쯤 되는데 24시간 돌아갑니다. 경영대엔 3차원(3D) 프린팅 시스템을 갖춘 창업공간도 있어요. 공대, 경영대, 도서관 등 학교를 대표하는 건물들을 창업 랜드마크로 변모시키는 중입니다.”

▷송도캠퍼스도 연세대만의 경쟁력 같은데요.

“올해로 7년 됐는데 신입생 전원이 송도캠퍼스에서 1년을 보내도록 한 건 5년차입니다. 전국 주요 대학 중엔 연세대뿐일 겁니다.”

▷송도에선 여러 교육실험을 하죠?

“삶과 공부, 공부와 여가 등 인생을 균형있게 살아갈 방법을 가르치고 있어요. 전담 교수를 두고 인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효과가 좋습니다. 지식을 얻기 위한 용도만이 아니라 삶에 영감을 주고, 감정을 풍부하게 하는 책을 많이 읽게 합니다. 융합실험도 꽤 합니다. 전공이 다른 여러 학생끼리 팀을 짜 스스로 과제를 찾아내도록 하는 식이죠. 지난해 46개 팀으로 처음 시도했는데 잘하면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겠더라고요. 올해는 100개 팀을 선발해 지원할 예정입니다.”

▷대선주자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교육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는 걸 간곡히 말씀드리고 싶어요. 뻔한 얘기로 들릴 수 있지만 결국 대학의 자율성이 중요합니다. 한 가지 기준으로 모든 대학을 일률적으로 규제하려 해선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듭니다.”

■ 김용학 총장은…'사회 연결망 이론'의 권위자

김용학 연세대 총장은 ‘사회 연결망 이론’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사회 연결망 이론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해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방법론이다.

국내 최초로 사회 연결망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한 업적을 인정받아 갤럽 우수 논문상, 학술원 우수 도서상, 문화관광부 우수 도서상 등을 받았다. 사회학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와 ‘Rationality and Society’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김 총장이 강의한 ‘사회구조와 행위론’ 수업은 학생들 사이에 명강의로 알려져 있다.

김 총장은 1980년 연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86년 미국 시카고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로 부임해 입학처장, 학부대학장, 사회과학대학장, 행정대학원장 등 학내 주요 행정보직을 두루 거쳤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총리실 인문사회위원회, 교육부 대학설립위원회에서 교육 정책 수립과 입안을 도왔다. 글로벌인재포럼 자문위원과 삼성생명공익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박동휘/성수영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