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신문을 보는데 좀 특이한 기사가 눈에 띄었다. 1심에서 중형이 선고된 화재사건 피의자가 2심에서는 무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왜 이렇게 선고 결과가 달라졌는지 궁금해 화재수사팀 감정관과 함께 판결문과 기록을 검토해 봤다. 얼핏 보기에도 무죄 근거로 삼은 사실 인정 과정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판결문 자체에서 드러난 과학적 모순점을 정리해 1차 보충 상고이유서를 제출한 뒤, 사건 발생 당시 상황을 재현하는 실험을 통해 추가 보충 이유서를 내기로 감정관과 협의했다. 그 사건이 대법원에서 심리 중인 상태에서 인사이동으로 과학수사부를 떠나게 됐고, 그렇게 사건은 내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로부터 2년 뒤 다시 대검찰청 과학수사부로 발령받아 당시 화재감정관에게 그 사건 결과를 확인해 보니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고, 2심에서 화재수사팀의 감정서와 감정관의 법정 증언을 주요 근거로 해 중형이 확정됐다고 했다. 사필귀정이라 하겠지만 자칫 진실이 묻힐 수도 있는 화재사건에 열정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임한 대검 화재수사팀이 있었기에 진실을 밝힐 수 있었다.

화재사건은 그 원인 규명이 어렵다. 화염으로 모든 것이 타버리고 불을 끄는 과정에서 그나마 남아 있던 증거도 훼손되기 쉽기 때문이다. 언젠가 화재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화마가 휩쓸고 간 현장은 사방이 검은 재로 덮여 있었고 화재 전에 어떤 용도로 사용한 곳이었는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발화 지점과 발화 원인을 찾아야 할 뿐만 아니라 방화자의 행위까지 추정해야 한다. 화재사건의 결과는 대부분 심각하다. 결과는 중하고 원인은 밝히기 힘드니 화재사건 수사가 어려운 것이다.

얼마 전 음악학원 연습실에서 벽면에 부착된 흡음재에 라이터로 불을 붙여 사람이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그 음악학원은 가연성 흡음재를 사용했다. 소규모 학원에는 난연성 흡음재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두 흡음재의 가격 차이는 크지 않다. 하지만 대검 화재수사팀의 실험 결과 그 차이는 놀라웠다. 가연성 흡음재는 마치 유류를 뿌린 듯 바로 불이 붙어 급격하게 확산됐지만 난연성 흡음재는 10초 이상 불을 붙여도 불이 붙지 않았다. 관할 검찰청에서는 실험 결과를 토대로 교육청 등 관계당국과 대책 마련을 위한 협의회를 열었고 개선 방안을 건의하기도 했다.

대검 화재수사팀은 2010년 1월 출범했다. 처음 화재수사팀이 생길 때만 해도 현장 중심의 화재사건 성격상 대검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얼마 못 가 사장될 것이라는 비관적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출범 8년째를 맞이한 지금, 대검 화재수사팀은 연간 100여건의 일선 청 화재 및 폭발사건을 재현 실험 등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작성한 감정서는 재판에서 주요 증거로 채택되고 있다. 재현 실험 과정에서 중앙소방학교, 한국소방산업기술원 등과도 협업하고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실험 결과를 토대로 ‘휘발유 폭발 범위의 현장 적용성에 관한 연구’ ‘유류 방화자의 화상 특성’ 등 연구 활동 결과물을 냈으며 두 권의 수사사례집을 펴내기도 했다. 또 미국 화재폭발 조사관 자격(CFEI), 화재조사관 강사 자격(CFII) 등 관련 자격증과 화재감정 관련 학위를 취득해 감정서의 공신력을 높였다. 화재수사팀의 진가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감정서를 통해 드러난다. 유죄의 증거뿐만 아니라 검찰에서 기소한 사건에서 객관적인 화재감정서를 제출해 피고인이 무죄 선고를 받기도 했다.

화재사건은 그 어려움과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화재감정관이야말로 진정한 대한민국 과학수사의 힘이 아닐까. 대검 화재수사팀의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