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이한나, 정연주, 박동혁.
왼쪽부터 이한나, 정연주, 박동혁.
“나라에서 주는 기회입니다.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열심히 일해 한국인의 위상을 높일 것입니다. 물론 2년 후엔 국제기구 정규직 콜을 받아야겠죠.”

다음달 말 국제기구초급전문가(JPO) 파견을 앞둔 이들의 다짐이다. 지난 17일 서울 광화문 외교부 청사 9층에선 ‘JPO 20기’ 9명에 대한 임명장 수여식이 있었다. JPO는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정부 지원 아래 1~2년간 수습직원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제도다.

외교부는 1996년 이후 지난해까지 20년간 143명의 JPO를 국제기구에 파견했다. 파견된 JPO의 78%가 파견 종료 후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외교부의 JPO는 ‘국제기구 진출의 지름길’로 통하고 있다. 수여식에 참석한 안총기 외교부 차관은 “지난해부터 국제기구에서 직접 JPO를 선발하는 방식으로 바꿨다”며 “여러분은 이미 국제기구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사람들”이라고 격려했다. 외교부는 매년 10명 안팎의 JPO를 선발하고 있다. 이번 JPO 선발엔 모두 233명이 지원해 2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임명장 수여식에 앞서 파견을 앞둔 JPO 3명을 만났다.

이번에 파견되는 JPO 가운데는 순수 국내파도 있었다. 4월 말 유엔환경계획(UNEP) 케냐 나이로비 수처리 담당관으로 가는 정연주 씨는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뒤 서울대 대학원에서 환경공학 석사 학위를 받은 특이한 이력을 지녔다. 5월 초 국제이주기구(IOM)로 파견을 앞둔 박동혁 씨(동국대)는 2004년 인도네시아 쓰나미를 보면서 전문지식과 기술이 없으면 위기에 닥친 사람을 돕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고 25세에 뒤늦게 프랑스 파리에서 개발학 공부를 시작했다. 석사 이상에 2년 경력을 요구하는 국제기구 특성상 전체 9명 중 5명은 국내 대학을 나온 뒤 해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나머지 4명은 해외대 출신이다.

국제기구 진출은 국내 취업보다 훨씬 힘든 길이다. 한국인 처음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JPO로 파견되는 이한나 씨는 “OECD는 보고서를 써야 하는 업무가 많아 필기테스트와 세 차례 인터뷰 등 거의 1년 동안 선발전형이 이뤄질 정도”라며 “보통 경쟁률이 500 대 1을 넘을 정도로 입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실력이 있다고 선발되는 것도 아니다. 정씨는 “자신의 전문분야 선발공고가 떠야 지원할 수 있기에 운도 많이 좌우된다”고 했다. 여러 차례 ‘탈락의 쓴맛’을 본 그는 해당 분야에 진출한 한국인 현직자에게 수없이 이메일을 보내면서 어떤 분야 국제기구에서 활동할 수 있을지 상담한 게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의외로 평이했다. 정씨는 “과거 팀내 갈등 극복 사례 등을 통해 함께 일할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며 “업무와 관련된 깊이 있는 질문은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유니세프의 탈락 기억을 떠올리며 지원하는 국제기구의 조직, 역사, 문화 그리고 지원부서의 최근 프로젝트는 무엇인지 사전에 숙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국제기구는 이력서에 기재된 경력이 맞는지 확인하는 ‘레퍼런스 체크’를 중시하기에 평소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도 실력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들은 국제기구 진출의 꿈을 꾸는 수많은 한국의 후배 대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으로 세상과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울 것”을 당부했다. 이씨는 지식은 공부하면 쌓을 수 있지만 인문학, 철학 등 자신만의 질문을 통해서 나온 세계관은 쉽게 쌓이는 게 아니기에 대학시절 세상을 보는 관점을 정리하고 기르는 시간을 꼭 가질 것을 당부했다. 이번에 JPO로 선정된 9명은 프랑스 파리(유네스코, OECD), 미국 뉴욕(유엔사무국 DPA, CTED), 독일 본(UNFCCC) 등 선진국에도 가지만 세네갈 다카르(IOM), 요르단 암만(UNHCR), 케냐 나이로비(UNEP), 우간다 캄팔리(Global Pulse) 등 험지에도 파견될 예정이다.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