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에서 노란색 프리스비(원반)를 던지고 있는 소녀가 있네요.”

마이크로소프트(MS)의 인공지능(AI) 서비스 ‘보는(Seeing) AI’가 스마트 안경을 쓰고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눈앞의 장면을 그대로 설명해주는 모습이다. 이 서비스는 스마트 안경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앞을 촬영하면 해당 이미지를 분석해 알려준다. 주위에 있는 사람의 모습, 사물 형태와 종류, 각종 문서의 글자 등을 해석해 음성으로 전달해 준다. 상대방의 입 모양이나 표정을 읽고 감정까지 파악할 수도 있다.

지난해 3월 이세돌 9단과의 바둑 대결에서 구글의 AI 프로그램 ‘알파고’가 승리한 것은 모두에게 충격이었다. AI가 사람을 대체하는 일이 더 이상 먼 훗날의 얘기가 아니란 걸 보여줬기 때문이다. 자신감을 얻은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은 스마트홈, 금융, 교통, 의학 등 다양한 분야에 특화한 AI 서비스를 개발하며 기술 선점 경쟁을 벌이고 있다. AI는 장애인을 돕는 기구로도 활용되고, 사람의 친구가 돼주기도 하는 등 인류의 삶 속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사람 감정 읽는 AI

도요타자동차는 올해 인간의 감정을 읽을 수 있는 AI 커뮤니케이션 로봇 ‘키로보 미니’를 출시할 계획이다. 10㎝ 크기의 초소형 로봇으로 운전자의 말동무 역할을 해준다. 예컨대 자동차가 급정거하면 “웁스!”라며 놀라기도 하고, 졸린 운전자에겐 농담을 걸어 잠을 깨우기도 한다. 내장된 카메라가 운전자를 관찰해 표정을 읽는 방식이다.

구글 알파고를 개발한 딥마인드는 옥스퍼드대와 함께 ‘독순술’이 가능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소프트웨어는 사람의 입술만 보고 무슨 말인지 해석해 낸다. 5000시간 이상의 BBC TV프로그램을 보면서 입 모양을 읽는 방법을 학습했다. BBC 프로그램에는 11만8000여개의 문장과 1만7500여개의 단어가 포함돼 있었다. 딥마인드 개발자들은 AI 독순술을 청각장애인의 대화 등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애플은 지난해 사람의 표정을 인식하는 기술을 보유한 AI 회사 이모션트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모션트 기술은 광고나 진열 상품을 보는 소비자의 반응을 분석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의사들이 말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아픔을 파악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을 전망이다.

페이스북이 개발한 AI 메신저 채팅로봇(챗봇)은 사람 대신 물건을 사주기도 한다. 챗봇을 통해 꽃 신발 등을 주문할 수 있고 생활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AI 음성 비서 서비스 개발에는 페이스북뿐만 아니라 애플, 구글, MS, 아마존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이 모두 뛰어들었다.

AI 택시도 등장

일본 통신사 NTT도코모는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7’에서 AI를 활용한 택시 서비스를 선보였다. 지역별로 30분 뒤 택시 수요를 예측해 운전기사에게 알려주는 서비스다. AI를 활용하면 기사는 빈 차로 돌아다니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고, 승객은 더 짧은 시간 안에 택시를 잡을 수 있다. NTT도코모는 “작년 하반기 도쿄와 나고야에서 시범 서비스를 한 결과 택시 기사의 소득이 49%가량 늘었다”고 발표했다.

AI는 소설 쓰기 등 인간의 창작 영역까지 침투하고 있다. “나는 처음으로 경험한 즐거움에 몸부림치면서 몰두해 글을 써나갔다. 컴퓨터가 소설을 쓴 날 컴퓨터는 스스로의 즐거움을 먼저 추구하느라 인간이 맡긴 일을 멈췄다.” 이 문장은 지난해 일본에서 발표된 단편소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 중 일부다. 저자는 인간이 아닌 AI다. 호시 신이치 공상과학문학상 1차 심사를 통과했다. 이 소설은 AI가 호시 신이치의 소설 1000편을 학습한 뒤에 썼다.

AI 진료도 현실이 됐다. 가천대길병원은 지난달 한국 최초로 미국 IBM의 암 진단 AI ‘왓슨’으로 암 환자를 진료했다. 환자의 나이, 몸무게, 과거 치료법, 조직검사 결과 등을 입력하면 왓슨이 가장 적합한 암 치료법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왓슨은 진료를 위해 세계 300개 이상의 의학 학술지와 200개 이상의 의학 교과서를 포함해 1500만쪽에 달하는 정보를 익혔다.
국내 기업들도 AI 기술 경쟁

국내 기업들도 AI 서비스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AI 플랫폼 회사인 비브랩스를 인수해 스마트폰, TV 등에 활용할 수 있는 AI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SK텔레콤과 KT는 아마존의 ‘에코’와 비슷한 음성 기반의 AI 스피커를 선보이기도 했다. 네이버는 AI를 활용한 통번역 서비스 등을 내놓고 정확도를 높여나가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AI 역량은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분석도 있다. 음성, 이미지 인식의 정확도가 미국 등 선진국에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IITP)가 1995~2014년 미국·일본·유럽·중국·한국 특허청에 등록된 AI 특허를 집계한 결과 최다 특허를 보유한 10대 기업에 한국 업체는 한 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MS 구글 IBM 등 미국계 기업이 상위권을 줄곧 차지했다. IITP가 AI와 인지 컴퓨팅 기술력을 2015년 기준으로 평가한 결과에서도 한국은 미국보다 2.4년, 중국보다 0.8년 뒤처진 것으로 분석됐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