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헌법재판소
헌법은 매우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법이다. 따라서 구체적 사건과 문제에 부딪히면 추상적인 조문의 구체화가 필요하게 된다. 실제 헌법은 법률의 제정이나 재판을 통해 구체화된다. 이 과정에서 헌법의 진정한 의미를 밝히고 헌법을 수호할 현실적인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바로 헌법재판이다.

헌법이라는 최고의 규범을 갖고 있는 나라라면 어디에서나 그런 기능이 필요하다. 다만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기관은 국가마다 좀 다르다.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일반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이 헌법재판도 맡는다. 입법부 우위 전통이 강한 미국에서는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을 심사할 경우에도 합헌성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 즉 합헌성에 상당한 의심이 가는 경우에도 그 위헌성이 회피될 수 있는 방향으로 법률을 해석하는 게 가능한지 여부를 일차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또한 다단계 위헌성 심사를 통해 가급적 위헌결정을 내리지 않으려는 전통이 있다.

다음은 헌법재판소라는 독립기관을 두는 방식인데 독일 오스트리아, 현재 우리나라 등이 이련 유형이다. 독일은 특이하게 헌재가 양원제로 운영된다. 양원은 각각 고유한 권한을 갖는데 1원은 규범통제소송 헌법소원 등을, 2원은 공무원 관계, 권한쟁의, 정당, 선거소송 등을 다룬다. 각 원에는 8명의 재판관이 있다. 독립기관에서 헌법재판을 담당하지만 헌법재판소나 법원이라고 하기 어려운 형태도 있는데 프랑스, 그리스가 여기에 속한다. 프랑스 헌법평의회의 위헌법률 심사는 법률 공포 전에 이뤄진다.

한국에서 헌법재판소는 제헌헌법부터 존재했다. 당시엔 헌법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위헌 법률 심판을 했고 탄핵심판은 별도의 탄핵재판소를 두어 처리토록 했다. 1960년 3차 개헌 때 헌법재판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나 5·16 쿠데타로 빛을 보지 못했다. 지금과 같은 헌법재판소가 정착된 것은 1987년 9차 개헌에서였다.

어제 헌법재판소가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렸다. 당연하다는 반응이 있는가 하면 헌재가 지나치게 여론을 의식, 사실관계 확인에 소홀했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헌법재판은 일반 재판과는 달리 어느 정도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다만 그 정치성이 무엇이며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곰곰이 따져봐야 할 것 같다.

김선태 논설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