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유명한 ‘거울의 방’을 찾아 2층으로 간다. 길이 73m, 넓이 10.5m의 웅장한 홀에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눈부시다. 정원 쪽으로 난 17개의 커다란 창문, 반대편 벽의 거울들이 함께 반짝인다. 578장의 거울을 이어서 벽 전체를 장식했으니 330여년 전엔 생각지 못할 첨단 시각장치다. 왕족 결혼식이나 외국 대사 접견 등 중요한 의식이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 방의 거울들은 영광뿐 아니라 치욕의 역사도 지켜봤다. 1871년 1월 프랑스에 승리한 프로이센이 독일제국의 황제즉위식을 연 곳이 바로 여기다. 비스마르크가 이끄는 프로이센이 통일의 여세를 몰아 프랑스까지 격파하고 새 제국을 선포한 곳이니 프랑스로서는 국치의 현장이다. 그날은 프로이센 국왕에서 독일제국 황제로 변신한 빌헬름 1세가 이 방의 주인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뒤인 1919년 6월, 이곳에 다시 독일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번엔 1차대전 패전국으로 프랑스 등 연합국에 항복하러 온 것이다. 이날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으로 전쟁은 공식 종결됐다. 독일은 48년 전 화려한 즉위식을 연 이 방에서 맥없이 무장해제당하고 엄청난 액수의 전쟁배상금까지 물어야 했다.
우리에게도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다. 2002년 11월 삼성전자가 베르사유 궁전을 통째로 빌려 전 세계 기업인과 기자들 앞에서 글로벌 로드쇼를 펼쳤을 때다. 정상을 위한 만찬이나 외교행사 외에는 좀체 대관해주지 않는 프랑스가 삼성에 특별히 허용한 것이다. 그날 베르사유궁 광장에 태극기가 펄럭였다. 특정 국가가 아니라 한 기업을 위한 것으로는 최고 등급의 배려였다.
그저께는 유럽연합(EU) 4대 강국 정상이 이곳을 찾았다. 유럽연합 모태가 된 로마조약 60주년을 맞아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가 모인 것이다. 이들은 각 회원국이 통합 속도를 스스로 선택하는 ‘다양한 속도의 유럽’ 방식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의 분기점마다 주목받는 거울의 방. 그곳에서 넋을 잃고 구경하다 허둥대던 내 모습은 어떻게 비쳤을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