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금리 인상 후폭풍에 상환부담 가중 → 내수 위축 악순환 우려
개인 채무구제 차별화하고, 자영업 신규 유입 축소책도 절실
임진 < 한국금융연구원 / 가계부채연구센터장 >
2014년 하반기 이후 한국의 가계부채 규모가 매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2~2013년 연평균 50조원씩 늘어나던 가계부채는 2014년 66조원, 2015년 118조원, 2016년에는 141조원 늘어나 2016년 말 1344조원을 기록했다. 2014년 이후 가계부채가 이처럼 빠르게 늘어난 것은 지속적인 금리 인하로 가계의 차입비용이 낮아진 가운데 부동산시장 규제완화에 따른 신규 아파트 공급 증대, 전셋값 상승 등으로 가계의 차입 수요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진이 지속되면서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한 생계비 대출 급증세도 한 요인이다.
가계부채가 과다한 수준에 이르면 가계의 재무건전성이 악화할 뿐만 아니라 금융회사 부실 가능성도 높아져 결국은 금융시스템 전반의 건전성이 위협받을 수 있다. 또 가계의 원리금 상환부담이 높아지면 가계가 소비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어 경제 전체적으로는 내수 부문 성장이 제약될 수 있다. 지난 1월 국제결제은행(BIS)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하면 경제성장률은 장기적으로 0.1%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국제적으로 볼 때도 높은 수준이다. 2014년 기준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6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인 136%에 비해 높은 편이다. 앞으로 대출금리가 상승하거나 내수 부진이 이어지면 가계부채 문제는 우리 경제에 심각한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미국 중앙은행(Fed)의 정책금리 인상 등으로 국내 대출금리 상승 압력이 크게 높아졌다. 지난해 12월 Fed의 정책금리 예상 점도표에 따르면 Fed는 올해 세 차례 정도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이 높다. 재닛 옐런 Fed 의장은 지난 3일 미국 시카고 경영자클럽 오찬 행사에서 “고용 목표는 대체로 달성됐고, 물가는 2% 목표에 다가서고 있다. 이달 14, 15일 열릴 예정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목표가 예상에 부합하면 금리의 추가 조정은 적절하다”고 했다. 당장 3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한 것이다. 3월 금리 인상 시사한 Fed
미국 시장금리가 오르면 한국의 대출금리도 동조화해 상승하는 경향이 있다. Fed가 3월 기준금리를 인상하더라도 한국은행이 곧바로 기준금리를 인상하지는 않겠지만, 시장금리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변동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원리금 상환 부담이 가중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말 기준 은행권 가계대출의 65%가 변동금리 대출이고, 취약계층의 제2금융권 대출도 증가하고 있다. 또 향후 내수 부진이 이어질 경우 저소득층의 가계소득 개선이 지연돼 이들 계층의 생계형 대출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올해 수출 부문 종사자의 소득 여건은 2016년에 비해 나아질 전망이지만 내수 부문 종사자의 소득 여건은 개선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융연구원의 경제전망에 따르면 민간소비는 2016년 2.4% 증가했으나, 올해는 1.4% 상승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는 대내외 불확실성 등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가계의 재화 및 서비스 구매 결정이 신중해지고 가격 민감도가 상승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 자료에 따르면 가구당 소득증가율(전년대비)은 2014년에는 3.4%, 2015년에는 1.6%, 2016년에는 0.6%로 점차 낮아지고 있다.
내수 부문 중에서 자영업자는 기업 구조조정, 김영란법 등으로 소득 여건이 더욱 나빠질 가능성이 높다. 정년퇴직하는 베이비붐 세대의 소규모 창업이 이어지는 가운데, 기업 구조조정으로 실직한 임금근로자도 자영업에 대거 나설 경우 자영업 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2016년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저소득층인 소득1분위의 가처분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482.7%로 고소득층인 소득5분위의 214.8%보다 크게 높은 수준이다. 이처럼 자영업자들은 소득 대비 부채 비율도 높기 때문에 소득 여건이 악화되면 채무 상환능력이 빠르게 약해져 곧바로 대출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의 우선순위를 저소득층에 둬야 하는 이유다. 저소득층은 여러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이면서 신용등급이 낮아 금리 상승이나 내수 부진이 지속되면 채무 상환능력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기 개선으로 소득 여건이 전반적으로 좋아지더라도 저소득층은 다른 계층에 비해 소득 여건이 더디게 개선되거나 개선 정도도 상대적으로 미흡하다.
취약계층 부채가 큰 문제
우선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서민정책금융 강화, 사금융 피해 방지 등 금융 측면에서의 지원이 절실하다. 둘째, 일자리 창출, 취업 재교육 등을 통해 취약계층의 소득 기반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채무 탕감 제도를 이용해 저소득층의 부채를 직접적으로 줄여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야기할 수 있다. 부채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도 안정적인 소득이 없다면 다시 빚을 지는 악순환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안정적인 소득을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저소득층 가계부채를 해결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정년 연장 등을 통해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 시기를 분산하고, 정년퇴직 후 계약직 형태의 재고용을 확대하고, 사회적 일자리 등을 확충해 자영업의 신규 유입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또 자영업 창업 희망자가 ‘준비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나 금융회사가 창업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밀화로 수익성이 낮을 것으로 예상되는 업종에 대해서는 해당 업종 전문가에게 창업 컨설팅을 받을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
소비형 개인 파산은 책임 물어야
넷째, 과다한 채무 부담으로 이미 한계 상황에 도달한 채무자에 대한 대책도 절실하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3월 말 현재 한계가구는 134만가구이며,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한계가구는 143만가구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 채무자 구제 제도는 과다한 채무로 파산한 사람들이 조속히 경제활동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그러나 개인 채무자 구제 제도는 채권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개인 채무자 구제 제도는 채무자 회생 지원과 채권자 권리 보호를 조화시켜야 한다. 싱가포르에서는 개인 채무자를 생활형과 소비형으로 구분해 의료비, 교육비 등으로 인한 생활형 파산에 대해서는 청산절차를 간소화한 반면 과소비, 불성실 등으로 인한 개인 파산은 책임을 좀 더 묻는 방식으로 개인 채무자 구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임진 < 한국금융연구원 / 가계부채연구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