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미씽나인·보이스…잔혹해지는 드라마들
안방선 1주일 내내 섬뜩한 살인 사건, 자극적 장면 '위험수위'…작품성 해쳐
대표적인 사례가 ‘보이스’다. 범죄 현장의 골든타임을 사수하는 112 신고센터 대원들의 치열한 기록을 그린 이 드라마는 시청자들의 몰입을 위해 자극적인 강력 범죄를 소재로 한다. 초반에는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주연배우들의 호연에 대한 찬사가 잇따랐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고 몰아치는 이야기 전개와 구성,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력도 인정받았다.
문제는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로 지나친 폭력 장면들이 이런 장점들을 가린다는 점이다. 극중 모태구(김재욱 역)는 신체 훼손, 아동 학대 및 살인미수, 장기 적출 시도 등을 즐기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흉기로 사람을 끝도 없이 내려치고, 시체를 벽에 못 박는다. 사망자의 머리카락을 수집하는 게 살인마의 ‘취미’다.
15세 이상 관람가로 버티던 제작진은 지난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행정지도인 ‘권고’ 제재를 받은 뒤 19세 이상 관람가로 방송을 내보냈다. 제작진은 “범죄 소재 특성상 극의 흐름을 더 현실적으로 연출하기 위해 시청 등급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일부 시청자 사이에서는 극단적으로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사건들이 피로감을 높인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최고 시청률 22.9%를 돌파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피고인’은 현직 검사로 부인과 딸을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교도소에 들어간 박정우(지성 분)와 재벌 2세 차민호(엄기준 분)의 갈등을 핵심 축으로 한다. 차명그룹의 쌍둥이 동생이자 문제아로 낙인찍힌 차민호는 형 차선호를 죽이고 형 행세를 하고 있다. 형의 내연녀에게 정체가 발각되자 그의 머리를 내리쳐 죽이는 등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 극의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잔인한 장면이 대거 등장한다. 교도소에 갇혀 있는 박정우가 탈옥을 위해 동료에게 깨진 유리로 자신을 찌르도록 하는 장면 등이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방송됐다.
‘미씽나인’엔 ‘불사신 살인마’가 있다. 매번 지옥에서 살아 돌아오는 최태호(최태준 분)다.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 표류한 최태호는 노래 실력이 부족한 자신 대신 얼굴 없는 가수로 뒤를 받쳐주던 신재현(연제욱 분)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죽음의 진실을 알고 있는 윤소희(류원 분)를 무인도에서 자살로 위장해 살해했다. 같은 팀 멤버인 이열(찬열 분)은 다툼 중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주인공들이 그의 손에 하나씩 죽어 나간다.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에도 살인마가 등장한다. ‘힘쎈 여자 도봉순’은 달달한 삼각관계 로맨스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 2회 만에 살인 및 살인미수 사건이 줄줄이 발생한다. 예상치 못한 전개에 2회 만에 시청률이 5.7%를 기록하며 금토드라마의 기대주로 부상했다.
대체적으로 시청률은 높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아동 및 청소년의 접근성이 높은 공중파 및 케이블 TV의 주요 시간대 드라마가 지나치게 잔혹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기 위해 점차 자극적인 장면이 많아지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