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소행과 국가 관여 테러는 다른 차원…北 고립 심화 불가피

김정남 암살에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외교관이 관여됐다고 현지 경찰이 발표함에 따라 북한의 국제적 고립은 더 심화할 전망이다.

한 외교 전문가는 22일 외교관 관여가 사실이라면 "북한의 테러리스트 국가로서의 이미지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며 "외교관이 관여했다면 비(非) 국가 조직이 자행하는 일반적인 테러와 달리 국가 자체가 테러를 자행한 셈이 된다"고 지적했다.

외교관이 관여한 경우 특정국가 국적을 가진 일반인이 개인적으로 저지른 테러 행위와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 해당 외교관을 보낸 국가가 책임을 져야하는 사안이라는 게 이 전문가의 설명이다.

그렇지 않아도 유엔 안보리 결의를 무시한 핵·미사일 개발로 국제사회에서 고립의 길을 가고 있는 북한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더욱 심각한 '고립무원'의 처지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단순히 말레이시아와의 관계가 타격을 입거나 국교 단절 사태를 맞는 수준을 넘어선 파장이 예상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유엔 회원국 자격에까지 문제를 제기해가며 북한을 고립시키는 데 주력해온 우리 정부의 행보는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오는 27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제네바에서 진행되는 제34차 유엔 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등 국제적인 인권 논의의 계기에 정부는 김정남 암살을 적극 거론함으로써 대북 제재·압박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조를 확산시키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정권 붕괴에 따른 전략적 타격을 우려, 북한의 숨구멍을 열어주고 있는 중국 역시 미국 등으로부터 대북 영향력 행사 압박을 더욱 강하게 받을 전망이다.

나아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자는 목소리가 미국 조야에서 한층 더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공화당 소속 테드 포(텍사스) 하원의원은 지난달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법안(H.R 479)을 공식 발의했고, 지난 12일 북한의 중장거리 탄도 미사일 시험 발사와 13일 김정남 사건 이후 이를 지지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한항공(KAL)기 폭파사건(1987년 11월) 이듬해인 1988년 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 올렸으나,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는 북한과의 핵 검증 합의에 따라 2008년 11월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했다.

북한 비핵화 협상의 진전과 테러지원국 문제는 별개였지만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에 탄력을 붙이기 위해 정치적으로 내린 결단이었다.

그후 북한이 북핵 합의를 깨고 핵무장으로 질주하는 동안 미국 내에서 테러지원국 재지정론이 제기됐지만, 오바마 행정부는 핵무기 개발과 직접 연관이 없는 테러지원국 재지정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 북한 외교관이 테러 행위에 개입한 사실이 분명해질 경우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조준형 기자 jhch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