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정책硏 이재현 연구원 "동남아국가, 남북 기계적 중립"
"초국가적 범죄 협력으로 접근해야 北불법활동 줄일 수 있어"


사실상 북한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는 김정남 독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가 북한 사안과 관련해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동남아 국가들을 압박하려 하거나 지나치게 간섭하려고 하면 큰 외교적 실수를 범할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 정부가 김정남 피살 사건의 배후로 사실상 북한 정권을 지목하고 국제사회를 통해 대북 압박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나온 주장이어서 주목된다.

특히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20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북한이 이러한 테러행위들에 대해 응분의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의 협력을 모색하기 바란다"면서 사실상 '응징'을 예고한 상황이다.

아산정책연구원 이재현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김정남 피살을 계기로 동남아에서 북한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동남아 국가들의 남북 등거리 외교와 전통적으로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거론하며 "한국과 동남아 국가와의 관계가 아무리 긴밀하다고 해도 이 때문에 동남아 국가들이 북한과 관계를 단절하거나 소원하게 지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말레이시아 측에 뭔가 할 말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고, 북한의 활동을 억제하기 위해 동남아 국가들을 세게 압박할 기회를 맞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사건은 말레이시아 입장에서 북한에 의해 북한 국민이 말레이시아에서 살해된 것으로 한국은 이 문제에 직접 연관이 없고, 남북대치라는 상황으로 간접적 관련성만 있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위원은 이번 사건으로 말레이시아는 물론 자국민이 연루된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도 당혹스러운 상황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동남아 국가들을 압박하려 든다면 자존심이 강한 동남아 국가들로부터 반발을 불러올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압박은 고사하고 한·아세안 관계까지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우회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과 다양한 초국가적 범죄 관련 협력에 더욱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를 통해 동남아에서 북한에 의한 인신매매, 마약 밀매, 돈세탁, 사이버 범죄 등 불법활동이 발붙일 여지가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과 동남아 국가들과의 관계에 대해 "1960~1970년대 동남아 지역에서는 북한이 한국에 비해 더 강한 외교력을 발휘했고, 남북의 힘과 지위가 역전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면서 "북한이 동남아에 건설해 놓은 전통적 관계와 네트워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한국과 동남아 국가들의 긴밀한 정치, 경제, 사회문화 관계에도 동남아 국가들은 한국과 북한을 똑같은 개별 국가로 다루는 기계적 중립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서울연합뉴스) 이귀원 기자 lkw77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