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구의 비타민 경제] 선별 금융의 교훈
물건을 파는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겠다는 사람에게 파는 것이 정상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1만원을 내겠다고 하고 전혀 모르는 인상이 안 좋은 사람이 2만원을 내겠다고 하더라도 2만원에 물건을 팔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금액이지 인격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을 빌려주는 장사를 하는 은행에 상품은 돈이고 그 돈에 대한 가격은 이자다. 즉, 은행의 돈을 빌리겠다는 사람들이 지불하는 가격이 대출이자다. 그럼 은행은 무조건 대출 이자를 많이 내겠다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야 할까. 그렇지 않다. 대부분 대출 희망자가 연 5%의 이자를 내겠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연 10%의 이자를 지불하겠다고 한다면 은행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10%의 이자를 내겠다는 사람은 다음 두 가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첫째는 정말로 능력 있는 사업가로서 비싼 이자를 지불하고도 이윤을 남길 투자자일 가능성이다. 하지만 두 번째는 무책임 사람으로서 위험한 곳에 도박성 투기를 하는 위험한 투자자일 가능성이다.

[한순구의 비타민 경제] 선별 금융의 교훈
세상에는 혹시 성공하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지만 실패의 가능성이 높고 실패하면 본전도 못 찾는 도박성 투자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1억원을 투자해 성공하면 1억원의 순이익을 올릴 수 있지만 실패하면 투자한 1억원도 잃는 투자다. 더구나 이런 실패의 확률이 50%라고 하면 자신의 돈으로 이런 투자를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은행의 돈을 빌릴 수 있다면 이런 투자를 하려는 사람이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성공하면 10%인 1000만원의 이자를 내고도 9000만원의 이윤을 남기는 것이고, 실패하면 원금 1억원을 모두 잃지만 자기 돈이 아니라 은행의 돈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논리다. 따라서 은행에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자를 내고 돈을 빌리겠다는 사람은 자기 돈이 아니라 은행의 돈으로 하겠다는 책임감 없고 요행수만 노리는 투자자일 가능성이 있다.

선별 금융이란 은행이 무조건 높은 이자를 내겠다는 사람에게 대출하지 않고 그 사람이 무슨 투자를 하는지에 대한 자세한 검토를 해서 비록 낮은 이자밖에 못 낸다는 사람이라도 그 투자 계획이 건실한 쪽에 대출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선별 금융을 하지 않고 대출 이자만 보고 판단하는 은행은 당연히 얼마 가지 못해 문을 닫게 될 것이다. 정치권에서 투기적 공약들을 내는 계절이 돌아왔다. 듣기 좋은 공약이라고 혹하기보다는 유권자들의 선별적인 투표가 필요할 것이다.

한순구 <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