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혁신은 대다수 경영자가 중시하는 당면 과제다. 그러나 혁신적인 조직을 만들기 위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에 관한 구체적인 질문에는 막연해하는 경우가 많다. 또 혁신은 지금까지의 일상업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어려운 과제로, 오랜 기간 쌓인 역량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기 때문에 단순히 구호에 그친 채 흐지부지될 때가 많다. 혁신지향적 조직으로 확 바꾸기 위해서는 일단 ‘혁신 시스템 구축’이란 멍석을 깔아야 한다.

조직에서 혁신은 누가 하는가? 많은 조직, 특히 제조업체에는 혁신 전담부서가 있다. 기술이나 제품 개발 부서, 프로젝트팀 등은 혁신 자체가 주요 업무다. 기획부서들은 상황에 따라 혁신에 참여하기도 한다. 이런 전담조직을 어느 정도 규모로 하고, 어느 정도 투자할 것인지는 기업의 자금 역량과 전략에 달려 있다. 이것은 주로 비용 대비 효과에 관한 투자 결정의 문제다.

다음은 생산, 구매, 마케팅, 인사, 재무, 회계, 총무 등 일상업무가 중심인 부서들이 혁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혁신 업무는 부수적인 것으로 인식된다. 따라서 그들이 혁신에 어느 정도 참여하느냐는 조직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이 부분은 투자가 크게 필요하지 않고 많은 구성원의 오랜 시간에 걸쳐 누적된 역량이 중요하므로 경쟁자가 쉽게 모방하기 어렵다. 조직 간 혁신의 승패는 여기서 결정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들로 하여금 혁신에 참여하도록 하는 시스템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공식적인 조직위계로 이뤄지는 사업계획이나 목표관리 같은 업무수행제도를 통해서다. 부서별 업무계획 수립 내용이 개선과제 중심이냐, 일상유지업무 중심이냐가 혁신 성패의 관건이다. 이때 유의해야 할 점은 일상유지업무는 쉽고 개선업무는 어렵기 때문에 일상유지업무가 계획 수립 단계에서는 ‘△△△ 활성화’ ‘OOO 제고’처럼 개선업무로 포장돼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개선 활동 제도다. 각종 팀 단위 개선 활동이나 개인별 제안제도 등이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대부분의 조직이 제안제도를 도입하고 있지만 1인당 연간 20건 정도 하는 조직부터 1건 미만인 조직까지 그 운영에는 편차가 매우 크다.

혁신시스템이 정비된 다음 혁신활동의 실행 과정에서는 적절한 혁신도구의 사용을 익숙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구성원에게 적절한 도구지식을 교육시키고 활용을 격려해야 한다. 보통 공과대학에서는 특정한 기술영역별로 문제 해결을 위한 지식을 교육한다. 사무관리 영역에 대해서는 경영학과 산업공학에서 관리도구를 교육한다. 서양의 근대 기업들은 이런 전공지식이 없는 조직원에게 처음부터 문제 해결이나 혁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문제 해결 지식을 교육받지 못한 현장 근로자들에겐 개선 요구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 기업은 달랐다. 4년간의 관련 분야 대학교육을 받지 않았더라도 간단한 7가지 문제해결 도구를 선정해 20~40시간 정도 교육만으로도 상당 부분 문제 해결이 가능함을 보여줬다. 기술적 지식이 필요한 부분은 관련 엔지니어와 팀을 짜거나 지도, 자문을 받는 것으로 해결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초등학교 때 배운 막대그래프는 통계학의 핵심 개념인 분포로서 문제 상태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된다. 문제들을 중요도 순으로 줄 세우는 파레토 그래프란 도구를 사용해 중요한 것부터 해결해나가자는 중점주의 원칙을 구성원이 실행하도록 한다.

개선이 익숙하지 않은 조직에서는 개선과제를 어떻게 도출해야 하는지 막막해할 때가 많다. 경영시스템의 전반적인 강·약점을 파악해 어디서부터 개선해나갈지 파악하기 위한 수단으로 말콤볼드리지 국가품질상 기준이 유효한 도구로 활용된다. 경영시스템과 조직역량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외부환경 변화의 기회·위협과 결합해 전략을 수립하고, 개선활동 과제를 도출하는 데 활용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다’는 속담이 있다. 특정한 문제를 설계 단계에서 해결하려면 1의 노력이 들지만 잘못된 설계를 생산 단계에서 해결하려면 10, 소비자 손에 넘어간 다음에 해결하려면 100의 노력이 든다고 한다. 따라서 예방 관리나 원류 관리의 개념은 어디서부터 개선해야 하는지 대상을 선정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된다. 문제가 정해지면 그 다음으로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원인을 찾아내 결과와 원인 간 인과관계를 파악하고 원인을 조치해 바람직한 결과를 얻어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가 일시적으로만 해결되는 증상치료가 있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근본치료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증상치료에 빠지기 쉬운 경향을 보인다. 예를 들어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밥을 못 먹은 것이 원인이므로 밥을 주면 해결된다. 그러나 5시간 뒤면 다시 배가 고파지고, 또 밥을 줘야 한다.

3년만 계속되면 그 사람은 일할 의욕을 상실하고 영원히 얻어먹는 사람이 돼 문제는 악화된다. 근본 치유를 하려면 근본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계속 “왜?”를 반복하며 근본원인을 찾아나가는 것이 답이다. 왜 배고픈가? 못 먹어서. 왜 못 먹었는가? 돈이 없어서. 왜 돈이 없는가? 일자리가 없어서. 왜 일자리가 없는가? 능력이 없어서. 왜 능력이 없는가? 못 배워서? 왜 못 배웠나? 부모가 돈이 없어서. 왜 부모는 돈이 없는가? 이런 질문의 구조 속에 빈익빈의 악순환 고리가 발견된다. 여기서 악순환 고리를 끊으려면 교육 개선이 필요해진다. 즉 배고픈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증상치료는 임시변통책이고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책인 것이다. 근본원인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다섯 번 ‘왜(why)’를 반복하라는 ‘5 why’라는 도구를 활용하는 것이 요령이다.

일단 개선됐다 하더라도 경영자가 소홀히 하면 다시 원래상태로 돌아가거나, 담당자가 바뀌면서 무시돼버리거나, 전수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개선으로 얻어진 개인의 지식이 조직의 지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개선시스템 구축은 실시된 개선에 대한 사후 관리와 표준화를 하는 시스템 구축으로 마무리돼야 한다. 개선시스템이란 멍석을 깔고, 적절한 개선도구를 손에 쥐어주고, 대다수 종업원이 그 멍석 위에서 개선 활동이란 춤을 추도록 하며, 개선의 결과는 조직지식으로 흡수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시간은 그 조직의 편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혁신과 개선의 결과물은 축적되고 나날이 종업원들의 개선 역량은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것은 결국 경영자 몫이며, 조직은 경영자 그릇만큼 커질 것이다.

'승자독식' 세계화 시대…혁신 경쟁 뒤진 수많은 기업들 도태

조직 '혁신의 문' 열려면…문제 본질 향해 끝없이 'Why'를 외쳐라
세계시장에서의 국내 기업 경쟁력을 시대에 따라 구분해보자. 1960년대 전까지는 선수등록이 안 된 장외선수, 1960~1970년대는 저품질·저가격으로 경쟁하던 삼류 선수, 1980년대 들어와서 중품질·중가격 수준에 이른 이류 선수라고 할 수 있으며 1988년께엔 거의 절정기를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1989년께는 매우 강력한 저가격을 무기로 ‘가성비’를 높인 중국 제품이 등장함에 따라 위기를 맞게 됐고, 1990년대 초반에는 우루과이라운드와 세계무역기구(WTO) 전개에 따른 세계화 시대의 돌입으로 세계 일류화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처절한 혁신에 대한 당위성이 대두됐다.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혁신에 나선 이유다. 당시 웬만한 기업은 혁신활동을 매우 활발하게 전개해 혁신이 체질화된 사람만이 임원으로 승진할 수 있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승자독식의 세계화 시대에는 조그만 혁신력 차이도 엄청난 경영성과의 차이로 나타난다. 1990년대에는 혁신 경쟁에서 뒤진 많은 기업이 도태됐고 그것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 반대로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누리고 있다.

정규석 < 강원대 경영회계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