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대기업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강의요청서에는 강의 장소인 연수원까지 회사가 제공한 차량을 이용하는 서비스가 포함돼 있었다. 강의 당일 아침, 아파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오르는데 운전기사가 언뜻 놀란 표정을 지었다. “기사님, 왜 그렇게 놀라세요”라고 묻자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회사에서 관장님을 연수원으로 모시라고 했는데 여자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외모도 전혀 관장님처럼 보이지 않고요.” 생뚱맞은 대답에 순간 당황한 나는 “저 말고도 여자 관장님이 많아요. 그런데 왜 제가 관장처럼 안 보였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체육관에 여자 관장님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운동하신 분 같지는 않아서요.” 몇 분 동안 소통불능의 대화가 오고간 다음 뒤늦게 서로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그는 나를 체육관 관장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미술관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았던 그는 차에 태울 강사가 관장이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태권도나 복싱관 관장을 떠올린 것이다. 그때 나는 “보통 사람에게는 미술관이 무척 낯선 공간일 수 있겠구나”라고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웃지 못할 해프닝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일반인에게 미술관이 친숙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6 문화향수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참여하는 문화 활동은 분야별로 영화 관람률이 73.3%로 가장 높았으며 대중음악·연예(14.6%), 연극(13.0%), 미술전시회(12.8%) 순이었으니 말이다.

미술관도 대중에게 미술관 문턱이 높게 느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평일에 작품을 설명해주는 도슨트를 배치하고,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의 날’에 관람료 할인, 야간 개장, 큐레이터와의 대화 등 대중친화적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도 미술에 대한 낯가림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이런 다양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2016년 1월 기준 국공사립, 대학을 포함해 미술관은 총 219개뿐이고 미술관장은 219명에 불과하니 미술관장을 체육관장으로 혼동하는 일이 또 일어난다 하더라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옥 < 사비나미술관장·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