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1등을 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영화는 없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개봉 주가 되면 배우들이 무대인사라는 것을 한다. 영화를 선택해준 관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한 일종의 이벤트다. 처음 무대인사가 시작된 것은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말 그대로 감사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정례화된 무대인사는 멀티플렉스 극장이 전국에 도입되며 시작됐다. 극장 체인이 몇 되지 않던 옛날과 달리 전국에 2000개 이상 스크린이 생기자 무대인사를 가야 할 곳도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요즘은 개봉 1~2주 전 무대인사 스케줄이 정해지고 그 일정이 일찌감치 고지되기 때문에 영화와 배우를 좋아하는 팬들은 무대인사가 잡힌 극장의 영화를 예매하고 기다린다.

설 명절을 앞두고 개봉한 영화 ‘공조’의 마케팅을 맡고 있는데, 어찌하다 보니 설 연휴 내내 무대인사를 하게 됐다. 이미 개봉 전 부산 대구 울산을 다녀왔고 개봉 후에는 서울 인천 일산 수원 성남 등 수도권 지역을 두루 거치는, 그야말로 대장정에 가까운 일정이었다. 설 연휴께 다다르니 매진사례와 짜릿한 역전의 기쁨 속에서도 배우, 스태프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연휴 내내 버스 안에서 도시락과 김밥으로 식사를 때우며 10시간씩 이동하는 일정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데 일산의 한 극장에 들어설 때였다. 맨 뒷자리의 어머님께서 함박웃음으로 박수를 치며 곧 춤이라도 출 것처럼 환하게 배우들을 맞이하셨다. 너무 기뻐하는 그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관객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자는 뜻에서 배우들이 무대인사 후 친필 사인 포스터를 주곤 했는데, 마침 배우 유해진 씨도 그 어머님을 봤는지 뒷자리로 성큼 올라가 포스터를 선물했다. 어머님은 배우들이 퇴장하는 순간까지도 포스터를 손에 꼭 쥐고 그렇게 환하게 웃으실 수가 없었다. 아마도 무대인사가 있는지 모르고 표를 끊으셨을 것이다. 배우들을 직접 보고 포스터까지 선물로 받은 예기치 못한 행운에 어머님은 너무도 행복하셨던 것 같다. 집안 일을 마무리하고 설 연휴 끝자락, 오래간만의 극장 나들이였을 것이다. 순간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님께 웃음과 행복을 드릴 수 있어 오히려 내가 행복했다.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시작한 일에서 되레 내가 행복을 되돌려 받았다. 무대인사를 모두 마친 마지막 날 회식자리에서 이런저런 회포를 풀던 차에 유해진 씨가 그 어머님 이야기를 꺼냈다. 참 기분이 좋았다며, 혼잣말처럼 “행복이라는 게 참 별게 아닌데 말이지”라고 할 때 모두 같은 생각에 젖어 다시 한번 가슴이 따뜻해졌다.

아마 어머님의 환대에 배우들은 더 열심히 연기하게 될 것이다. 영화를 만드는 제작진은 더 좋은 영화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어머님을 떠올리며 잠시 잊었던 영화에 대한 나의 초심과 본심을 꺼내본다. 1등을 하려고 만드는 영화는 없다. 더 많은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영화는 제작된다. 설 연휴에 ‘공조’와 ‘더 킹’ 두 편의 한국 영화로 잠시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내셨다면 그 이상의 보람은 없을 것이다. 꼭 ‘공조’를 본 관객이 아니어도 감사하다. 설 연휴에만 이 두 편의 한국 영화에 450만명 가까이 되는 관객이 찾아주셨다. 자리를 가득 메워준 관객 여러분을 보며 새해, 첫 마음을 잃지 말자고 다짐했다. “관객 여러분, 좋은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하는 가교 역할에 저희는 내일도 모레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윤정 < 영화전문마케터·퍼스트룩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