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회사에 증권 관련 집단배상 책임을 물은 첫 판결이 나오면서 현재 이뤄지고 있는 다른 집단소송에도 힘이 실릴 전망이다. 법원이 그동안 집단소송 허가나 관련 배상 판결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 도이치뱅크 주가연계증권(ELS) 판결로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분석이다. 증권 관련 피해자들의 유사 소송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증권집단소송 첫 배상…유사소송 '봇물' 예고
◆금융사, 수백억원 배상 가능성

20일 대법원에 따르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증권 관련 집단소송은 총 8건이다. 이 소송들에서도 배상 판결이 나오면 연루된 금융사들은 최대 수백억원이 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법원은 도이치뱅크 사건에서 도이치 측의 주장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고 모든 피해자에게 청구액 전액인 85억여원을 배상토록 판결했다. 도이치뱅크는 ELS 만기일에 기초자산인 국민은행 주식을 대량 매도한 것에 대해 “ELS 상환금을 마련하고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막기 위한 매도였다”고 해명했지만 재판부는 “국민은행 주식이 기준 가격을 넘어설 때마다 반복적으로 매도했다”며 만기 상환을 피하기 위한 시세조종으로 판단했다.

GS건설이 2012사업연도 재무제표를 허위 기재한 건에 대해 주주들이 2013년 낸 집단소송은 피해자가 1만262명에 이른다. GS건설이 진행 중인 재판에서 지면 총 460억원을 배상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아직 재판 허가가 나지 않았지만 동양그룹 회사채와 기업어음(CP) 투자자들이 2014년 동양증권 등을 상대로 낸 집단소송은 약 1만8000명의 ‘피해자’가 조(兆) 단위의 배상을 노리고 있다. 도이치뱅크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법무법인 한누리의 김주영 변호사는 “집단소송을 검토하는 증권 관련 피해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집단소송법 개정 움직임도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를 내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가 2월 임시국회에서 증권 관련 집단소송법 개정안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채 의원은 지난해 8월 금융사가 불복하더라도 법원의 중지명령이 없는 한 집단소송 재판을 진행토록 하는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피해자들이 집단소송을 통해 배상을 받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집단소송은 일반 소송과는 달리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만 할 수 있다. 허가를 받더라도 상대방이 불복하면 항고 재항고를 거쳐 대법원에서까지 허가 여부를 다퉈야 한다. RBC 주가조작 피해자들도 2010년 소송을 낸 후 6년 만에 소송을 허가받았다. 실제 재판에서도 장기간 법리를 다퉈야 한다. 도이치뱅크는 이번 판결과 관련해 항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소송 확대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원 기업연구실장은 “집단소송은 남발 우려 때문에 유럽에서도 도입되지 않고 있다”며 “요건 완화는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증권집단소송제도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2005년 도입된 제도다. 대표 소송이 승소 판결을 받으면 효력이 자동으로 모든 피해자에게 미쳐 일괄 배상을 받는다. 집단소송 허용 여부는 법원이 결정한다.

임도원/이상엽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