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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파원 칼럼] 민관이 하나된 일본의 일하는 방식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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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은 지속성장 위해 노동혁신 박차
    '인구절벽' 위험 직면한 한국도 배워야

    서정환 도쿄 특파원 ceoseo@hankyung.com
    [특파원 칼럼] 민관이 하나된 일본의 일하는 방식 개혁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 본격 시동을 걸겠다”며 올해를 ‘일하는 방식 개혁의 원년’으로 선포했다. ‘일본 우익의 성지’인 미에현 이세신궁을 참배한 뒤 개최한 연두 기자회견에서다. 이날 오전 도쿄 총리관저 시무식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도 직원들에게 “일하는 방식의 개혁을 속도감 있게 추진해 제대로 된 결과를 낼 것”을 주문했다.

    정부 관계자만이 아니다.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은 5일 경제 3단체 신년인사회에서 “노동시간을 제대로 관리하는 것은 경영자의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연초부터 일본 내 근로개혁 바람이 뜨겁다. 아베 총리는 지난해 9월부터 네 차례 ‘일하는방식개혁실현회의’를 직접 주재했다. 한 달에 한 번꼴이다. 이 기간 일본에서는 1주일이 멀다 하고 관련 정책이 쏟아졌다. 일하는 방식의 개혁은 재택근무 확산, 장시간 노동 개선 같은 단순한 근무 형태의 변경뿐 아니다. 겸업·부업 허용과 비정규직 처우 개선, 여성이 일하기 쉬운 환경 조성, 성과급제 확산 등 근로 의욕을 고취하고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안을 포괄한다. 일과 관련한 총체적인 노동시장 혁신이다.

    20일 정기국회에 상정될 올해 세제 개편안과 예산안도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이 수두룩하다. 올해부터 소득세상 배우자 공제 대상이 되는 부인의 연봉 상한액은 103만엔에서 150만엔으로 올라간다. 여성을 일자리로 불러내려는 취지다. 예산안에는 근로 개혁과 관련한 예산만 2100억엔(약 2조1000억원) 들어 있다. 지난해보다 30% 불어났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 신입 여직원이 2015년 과로사한 뒤 기업들 사이에도 장시간 근로문제를 개선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일정 시간 휴식을 보장하는 ‘근무 간 인터벌제도’나 ‘주 4일 근무제’ 도입은 쉬운 예다.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렌은 올 춘계 노사협상용 경영계 지침에 노동시간 단축과 여성 근로 촉진을 위한 배우자수당 축소를 권고했다. 기업의 재고용 연령을 70세로 올리거나 아예 사회·경제적으로 65세인 노인 연령기준을 70세로 조정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아베 총리가 일하는 방식 개혁에 목을 매는 것은 지속 성장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만 15~64세)는 2015년 7628만명으로, 최고였던 1995년(8659만명) 대비 1000만명 이상 감소했다.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면 아베 총리가 목표로 한 2020년 일본 국내총생산(GDP) 600조엔 달성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 저출산·고령화를 해결하는 데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우선 일하는 방식부터 뜯어고치려는 계산이다. 일본 정치권은 이런 민·관의 노력에 제동을 걸지 않는다.

    올해부터 한국도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든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 속도는 일본을 능가한다.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한 1996년께부터 저성장 나락으로 떨어져 ‘잃어버린 20년’을 경험한 일본이 추진하고 있는 일하는 방식 개혁을 자세히 보고 배워야 할 때다.

    서정환 도쿄 특파원 ceose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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