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유전자 검사
3년 전 할리우드 여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멀쩡한 가슴을 제거했다. 암을 일으킬 확률이 높은 유전자를 확인한 다음 예방 차원에서 절제했다고 한다. 2015년에는 난소와 나팔관까지 없앴다. ‘앤젤리나 효과’ 때문인지 한국에서도 유방절제 건수가 5배나 늘었다. 유전자 분석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그러나 치료법을 찾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2011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가 죽기 1년 전 유전자 검사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치료할 약이 당시엔 없었다.

잡스의 유전자 검사 비용은 10만달러(약 1억2000만원)였다. 2003년 5000만달러(약 600억원)에 비하면 ‘껌값’이다. 10년 전인 2006년에도 30만달러(약 3억6000만원)였으니 갑부가 아니면 꿈도 못 꿨다. 그러던 게 2013년 1000달러(약 120만원)까지 내렸다. 엊그제는 미국 기업 일루미나가 ‘단돈 100달러(약 12만원) 시대’를 열었다. 3년 전 1000달러로 낮췄던 그 회사다. 2주 걸리던 분석도 단 하루에 끝낼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올 3월부터 일부 유전자 검사에 보험이 적용된다. 지난해 6월엔 병원이 아니라 민간 기업에도 검사를 허용했다. 물론 졸리가 받았던 유방암 검사 등 대부분의 질병 관련 유전자 검사는 예측률이 낮아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머잖아 암 관련 검사도 쉬워질 전망이다. 유전자 검사는 신약 개발에 획기적인 도움을 준다. 신약 하나 개발하는 데 10~15년, 20억~30억달러가 소요된다. 그러고도 실패율이 95%에 이른다. 질병의 유전 정보를 알고 개발하면 그만큼 비용을 줄이고 성공확률도 높일 수 있다. 세계 각국이 고민하는 의료비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다.

인종별 국가별 특징을 분석해 만성질환과 유전 요인을 알아낼 수도 있다. 한국 사람 25만명의 유전체 분석 정보를 모은 ‘한국인칩’이 내년까지 완성될 모양이다. 이를 활용하면 한국인만의 특정 유전정보가 어디 있는지 쉽게 찾을 수 있다. 질환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사이의 차이점도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식품업계와 동식물 분야로도 관련 시장이 넓어지고 있다. 식물 유전체 분석 결과를 상품에 표시하면 소비자 신뢰가 높아진다. 네덜란드와 캐나다에서는 일정 비용을 받고 동식물의 유전체 분석 결과를 인증해준다. 원산지 입증까지 해준다. 유럽에선 고객의 유전자 검사 결과와 연계한 맞춤형 영양제, 화장품을 내놨다. 1차 ‘바이오 혁명’에 이은 2차 ‘유전자 혁명’이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