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불법적 비자금과 합법적 공자금은 다르다
대통령 비선 측근 국정 농단으로 인한 탄핵 정국이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엉켰다. 현안은 쌓이는데 국정 리더십은 실종 상태다. 해운·조선업 대량 해고와 대기업 신규 채용 부진으로 고용 사정도 최악이다. 타이밍을 골라잡은 김영란법으로 소비 심리는 더욱 얼어붙어 자영업은 존폐 기로에 내몰렸다.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정부는 대기업 경영자 중심의 경제팀을 구성해 미국 기업의 해외 생산시설 환류를 압박하면서 법인세율도 대폭 인하할 방침이다. 중국의 한류에 대한 견제와 한국행 여행규제 움직임도 걱정거리다. 미국 금리인상에 따라 환율 변동 폭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일본의 통화스와프 변덕도 껄끄럽다. 보호무역 확산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는 치명적이다. 세계 각국 글로벌 기업은 생존전략에 매진하는데 국회 청문회에 불려다니는 한국 대기업 총수는 출국금지 상태다. 코미디 같은 비선 측근 국정 농단이 노출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탄핵이 발의되기도 전에 거취를 국회에 위임한다는 뜻을 밝혔다. 헌법재판소가 신속한 탄핵심판을 통해 새로운 리더십 구축을 앞당겨야 한다.

탄핵 정국의 뇌관은 박 대통령과 대기업 간 뇌물수수 혐의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뇌물에는 형벌과 함께 거액의 추징금이 집행됐다. 정주영 현대 창업주도 정치 입문 후 대선과정에서 현대중공업 비자금을 끌어 쓰다 적발됐고,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후보도 국세청 간부가 개입된 세풍사건으로 곤욕을 치렀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불법 정치자금에 휘말렸으나 상대 후보보다 아주 적은 수준이어서 별 탈 없이 마무리됐다.

이번 뇌물 논란은 과거와는 다른 차원이다. 과거 정권에서는 불법적 비자금이 동원됐다. 비자금은 수입 누락이나 가공경비계상을 통해 조성된다. 임원 보수 중 일부를 회수하거나 하청업자로부터 받은 리베이트를 활용하기도 한다. 비자금을 뇌물로 받은 측에서도 수령한 사실을 감추지만 정권이 바뀌면 대규모 검찰 수사를 통해 전모가 드러난다. 비자금을 기록한 비밀장부를 협박 수단으로 이용하는 영화나 드라마 장면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번 뇌물 혐의는 양측 모두 공식적으로 회계장부에 기록한 ‘공(公)자금’ 거래다. 뇌물 혐의 대상인 K스포츠와 미르는 주무관청에 등록된 공익재단으로서 세법이 인정하는 기부금 수령 기관이다. 주무관청의 승인을 받아 선임한 이사와 감사가 자금을 집행하고 결산서는 감사원 감사 대상이다. 비자금에 의한 뇌물죄의 경우 수사 개시와 함께 뇌물자금은 압수되고 법원 판결에 따라 몰수된다. 개인이 부동산을 샀거나 정당이 당사를 구입했다면 이를 공매 처분해 환수한다. 그러나 K스포츠와 미르재단은 기부받은 자금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임직원 급여도 정상적으로 지급한다.

승마 선수를 지원하는 기업은 투명한 회계절차에 따라 집행하고 사용내역을 주기적으로 보고받는다. 선수 개인용 지출이 확인되면 기업은 손금불산입 처리를 통해 법인세를 납부하고 선수에게 주의시킨다. 승마, 골프처럼 경기와 레저의 경계선이 모호하고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종목은 지출 타당성에 대한 분란이 잦다.

기업 총수가 대통령을 대면한 자리에서 경영상 애로를 털어놓지 않는다면 주주에 대한 배임에 가깝다. 오랫동안 운영하던 면세점이 문을 닫아 수천 명의 종업원이 일터를 잃거나 해외펀드와 경영권 다툼으로 투자에 장애가 생길 상황이라면 대통령에게 호소해야 한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대통령을 면담한 이후 한전 부지 신사옥 공사가 빨라졌다며 불교단체가 특검에 뇌물 혐의로 고발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공익재단에 대한 기부 행위를 뇌물죄로 연결하면 공익사업은 크게 위축될 것이다. 뇌물죄 확정판결을 받은 기업은 신용평가와 국제입찰에서 심각한 불이익을 피할 수 없다. 불법 비자금 척결과 투명회계 정착에 대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으로 과세 포착률은 높아졌고 세수 증가도 뚜렷하다. 불법적 비자금과 합법적 공자금이 근본적으로 다름을 충분히 감안한 법 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이만우 < 고려대 경영학 교수 leemm@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