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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언론사의 새해 여론조사 결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대부분 1위에 올랐다. 한국경제신문과 MBC가 공동으로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일 발표한 대선 주자 지지율에서 문 전 대표는 25.1%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19.7%)보다 오차 범위내 이지만 앞섰다.

문 전 대표는 연합뉴스와 KBS(코리아리서치에 의뢰)의 조사에선 21.6%로, 조선일보(칸타퍼블릭에 의뢰) 조사에선 24.0%로, 동아일보(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 조사에선 22.7%로, 중앙일보 조사에선 25.8%로 각각 1등을 달렸다. (각 여론조사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여론조사 1위의 긍정적 측면은 ‘밴드왜건 효과(Band wagon effect)’를 누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밴드왜건 효과는 악대차(band wagon)가 악단을 선도하며 요란한 연주를 하면 사람들이 이 악대차를 쫓아가는 모습에서 유래됐다. 정치적으로는 선거를 앞두고 실시하는 여론 조사에서 우세한 후보 쪽으로 유권자들의 표가 몰리는 현상을 뜻한다.

신년 여론조사 1위는 대세론을 형성시켜 지지율 상승에 탄력을 붙게하는 힘이 될 수 있다. 절대 강자 이미지를 확산시켜 뚜렷하게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는 중립지대 유권자들이 ‘될 사람한테 지지하자’는 쪽으로 몰리게 하는 원동력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문 전 대표 측이 ‘문재인 대세론’을 강조하는 이유다.

물론 지지율 1위가 긍정적 측면만 있는게 아니다. 무엇보다 다른 주자와 정당들의 집중적인 공격 대상이 되면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이미 민주당 내 다른 주자들 뿐만 아니라 다른 정당들이 문 전 대표 비판에 나섰다.

민주당 소속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8일 전북 전주에서 기자들과 만나 “문 전 대표는 당 대표 시절 친문(친문재인) 인사를 줄 세우며 분당이라는 폐해를 낳았다”며 “지금도 여전히 문 전 대표가 당을 지배하고 있고 이런 기득권이 문제를 가져왔다”고 날을 세웠다. 이어 “청산돼야 할 기득권 세력”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또 “다음 서울시장 후보로 나설 사람까지 찍어놨다는 말이 있다”며 “당의 분열을 불러온 문 전 대표는 적폐 청산의 대상이지, 청산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했다.

박 시장은 지난 6일엔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내놓은 개헌 반대 보고서와 관련, “공당(公黨)의 공식 기구에서 벌어진 일인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민주연구원의 보고서엔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의 대선 승리를 위해 개헌을 반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성남시장도 개헌저지 보고서를 비판한 비문(비문재인)계 의원들을 상대로 비난문자를 대량으로 보낸 친문 지지세력을 향해 “당을 망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부겸 의원은 “정당의 싱크탱크라면 어떤 특정인의 입장에서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다”고 당 지도부와 친문계를 비난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 전 대표의 페이스메이커 아니냐’는 질문에 “초반에 죽어라 뛰어 상대 후보를 지치게 하는 것이 페이스메이커인데, 지금 사력을 다하는 사람은 문 전 대표”라며 “나는 여유있게 따라가다 마지막에 1등을 하겠다”고 문 전 대표를 견제했다.

박 시장은 이 시장과 호흡을 맞춰 반문(반문재인)전선을 형성하는 양상이다. 박 시장과 이 시장은 지난 3일 국회에서 열린 ‘민생, 현장에 답이 있다’ 토론회에 함께 참석했다. 박 시장이 “먹고사는 문제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고 하자 이 시장은 ‘민생연대’ 제안으로 화답했다.

다른 당들도 문 전 대표 견제에 나섰다. 김동철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9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에서 “정치권에 문자테러가 횡횡한다. 계파패권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저와 주승용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의 핸드폰이 타깃이 됐고, 후원회 계좌도 18원(욕설을 의미)으로 채워졌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바로 이것이 친문 패권으로의 정권교체가 안 되는 이유이고, 국민의당이 친문 패권과 손잡을 수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도 자신의 주장과 다르다고 벌떼처럼 일어나는데 만일 이들에게 권력의 칼이 주어지면 어떤 수준의 테러를 할 지 상상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문 전 대표는 그들이 누구인지 잘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적극적인 제지가 아니라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고 쓴소리했다. 그러면서 문 전 대표를 향해 “당장 문자테러단의 활동을 중지하도록 하라. 그들의 해산을 요구해라”고 말했다.

주 원내대표도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친문 패권주의가 청산되지 않고서 정권이 창출되면 박근혜 정권과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과거 지지율 1위 후보들이 다른 후보들의 집중 견제를 받고 무너진 사례가 적지 않다. 고 전 총리는 2005년 지지율 30%대로 선두를 보였지만 집중 견제를 받은 끝에 2007년 1월 뜻을 접었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박찬종·이인제 후보가 지지율 고공 행진을 나타냈으나 역시 대권 도전에 실패했다. 이회창 후보는 1997년과 2002년 ‘대세론’을 형성하며 선두를 달렸으나 아들 병역 문제 등 문제로 다른 당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아 무너졌다.

문 전 대표가 지지율 1위지만 한계도 있다. 20%대 박스권에서 좀체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장성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대구·경북(TK)지역과 충청권 1위자리를 반 전 총장에 내줬다. 30%대의 당 지지율에도 훨씬 못미친다. 2012년 신년 대선 지지율 조사 때 당시 박근혜 후보가 다자대결에서 30%대를 나타낸 것과 비교된다.

지지율 1위는 다른 정치세력의 연대를 불러올 수 있다. 야권에선 반문연대 움직임이 활발하다. 대선판이 ‘친문 대 반문’구도로 짜여지는 것은 문 전 대표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을 동시에 상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선거 전략가들이 가장 싫어하는 구도다. 김부겸 민주당 의원은 문 전 대표를 향해 “결코 자만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