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 올해 3조 투자
SK이노베이션이 올해 신사업과 인수합병(M&A) 등에 최대 3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지난해(8000억원)의 네 배에 가깝다. 2005년 3조원을 들여 인천정유(현 SK인천석유화학)를 인수한 이후 12년 만에 최대 규모 투자다. 지난달 대규모 세대교체 인사와 SK하이닉스의 3차원(3D) 낸드플래시 투자(2조2000억원)에 이어 SK이노베이션이 대규모 투자 계획을 내놓으면서 재계에서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혁신을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3조원 중 기존 울산 정유·석유화학 공장의 정기보수 투자는 40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조6000억원은 충남 서산 배터리 공장 증설, 충북 증평 배터리 분리막 공장 증설, 화학사업과 석유개발분야 국내외 유망 기업 M&A나 지분 인수 등 신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채용도 크게 늘려 5년간 신입·경력직원 1200여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SK이노베이션의 국내외 직원은 6000여명이다. 이를 지금보다 20% 늘릴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올해 공격적 투자에 나선 것은 성장 정체 극복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은 SK의 핵심 계열사다. 지난해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인 3조원에 이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유가에 따라 수익이 좌우되는 천수답식 사업구조와 신성장 동력 부재로 기업가치는 청산가치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저평가돼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해 6월 확대 경영회의에서 “대부분 관계사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1도 안 되는 등 각종 경영지표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기업 간 경쟁을 전쟁에 비유하는데, 진짜 전쟁이라면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이어 지난해 말 대규모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정철길 SK이노베이션 부회장을 교체하고 그 자리에 ‘전략통’으로 불리는 김준 SK에너지 사장을 앉혔다. ‘지금의 실적에 만족하지 말고 변하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의 신규 투자는 우선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 집중된다. SK이노베이션은 충남 서산 공장에 연간 4만대분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이를 장기적으로 지금의 4배 수준인 연간 16만대분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2018년까지 1차로 연간 3만대분의 배터리 생산라인을 증설한 뒤 시장 상황을 봐가며 추가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충북 증평의 배터리 분리막 공장도 증설한다. 배터리 분리막은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로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일본 아사히에 이어 이 분야 세계 2위다. 2020년까지 1위 사업자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화학산업과 석유개발 분야에선 국내외 유망 기업 인수합병(M&A)이나 지분 인수를 추진한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부터 글로벌 강소 화학기업 인수를 추진해왔으며 조만간 성과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파트너링(제휴)을 통한 합작 투자에도 나선다. SK이노베이션은 중국 석유회사 시노펙, 사우디아라비아 석유화학 기업 사빅, 일본 JX에너지, 스페인 렙솔 등 해외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석유화학 사업, 윤활유 사업 등 비(非)정유 부문을 키우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눈독을 들이는 중국 석유화학 기업 상하이세코의 지분 인수 건은 이번 3조원 투자 계획에는 빠져 있다. 상하이세코는 영국 BP가 50% 지분을 가진 최대주주이며 중국 시노펙(30%)과 상하이석화공사(20%)가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BP 지분 인수전에 뛰어든 상태다. BP의 보유지분 가치는 2조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SK이노베이션이 지분 인수에 성공하면 올해 투자금액이 5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수 있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상하이세코 지분 인수 여부는 아직 가변적”이라며 “이번에 발표한 3조원은 투자 계획이 확정된 것만 포함시켰다”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은 글로벌 성장을 가속화하기 위해 조직 개편도 단행했다. 석유개발 부문 본사를 미국 휴스턴으로 옮기고 자회사인 SK종합화학의 글로벌 사업 전략을 총괄하는 글로벌마케팅본부를 중국에 신설했다. 김형건 SK종합화학 사장은 2015년부터 사무실을 서울에서 중국 상하이로 옮겼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대규모 투자를 이어갈 가능성이 있다. SK이노베이션은 2015년 2조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린 데 이어 지난해에는 3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2014년 말 7조8000억원대에 달했던 순차입금이 작년 9월 말에는 1조1000억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 기간 부채비율은 119%에서 77%로 낮아졌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올해와 내년 투자재원이 7조원에 달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 사장은 올해 투자 계획 확정에 앞서 열린 내부 경영진 회의에서 “올해 경영 환경이 녹록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단 없는 구조적 혁신을 통해 돌파해야 한다”며 “과감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새로운 성장 옵션을 발굴하자”고 강조했다.

주용석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