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맨 왼쪽)이 지난달 27일 근대의료박물관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맨 왼쪽)이 지난달 27일 근대의료박물관 내부 구조를 설명하고 있다.
“한국 의료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한 것은 부모세대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건강보험도 세계적인 명품 보험으로 키울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달 27일 경남 거창에서 열린 근대의료박물관(사진 왼쪽) 개관 기념식에 참석해 “의료인들은 봉사한다는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성 이사장은 이날 기념식을 찾은 내외빈에게 박물관의 의미를 설명하고 진료실, 수술실, 엑스레이실 등을 돌며 내부 공간을 직접 소개했다. 이 박물관은 1954년 완공된 자생의원을 개조해 만들었다. 성 이사장의 부친인 성수현 원장은 2003년까지 자생의원에서 환자를 돌보다 2008년 세상을 떠났다. 성 이사장과 가족은 부친이 짓고 환자를 본 병원 건물을 2012년 거창군에 기부했다. 성 이사장은 “아버지가 50년 넘게 지역 주민을 진료하며 살았던 장소”라며 “지역 청소년들이 박물관에서 꿈을 키우고 롤모델로 삼을 수 있다면 영광”이라고 말했다.

성상철 이사장 "의료인은 환자편에서 생각해야 인술 펼 수 있어"
고(故) 성 원장은 서울대 의대 1회 졸업생이다. 대학 교수라는 평탄한 삶을 포기하고 지역 주민을 위한 의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병원 한편에 살림집을 꾸려 잠을 자다가도 환자가 오면 일어나 진료를 했다. 스물여섯 개의 입원실을 갖춘 비교적 큰 의원이었지만 혼자 환자를 봤다. 의료환경이 열악해 먼 곳에 환자가 생기는 일도 많았다. 수시로 자전거를 타고 왕진을 다녔다. “무장공비가 출몰하는 지역으로 왕진하는 날에는 할머니가 잠을 못 주무시고 아버지를 기다렸다”고 성 이사장은 회상했다. 이렇게 애쓰며 진료했지만 사정이 딱한 환자들에게서 치료비를 받지 못하는 일도 많았다.

성 이사장은 “장인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만든 신현확 전 국무총리인데 어느날 아버지가 장인을 만나 ‘덕분에 돈을 벌게 됐다’고 하셨다”며 “건강보험이 생겨 돈 없는 환자의 진료비 일부라도 받을 수 있게 됐다는 의미였다”고 말하면서 웃었다.

성 이사장은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정형외과 의사다. 아들 용원씨도 흉부외과 의사로 서울시 보라매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성 이사장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진료를 하셔서 3대가 같은 시기에 환자를 봤다”며 “3대가 모두 의사인 집은 많아도 함께 환자를 본 집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사의 길은 결국 환자를 돌보는 것”이라며 “아버지의 길이 후대 의사들에게도 귀감이 됐으면 한다”고 했다.

성 이사장은 부친과 장인이 멘토라고 했다. 두 분이 기틀을 닦은 한국 의료와 건강보험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어려운 일이 생겨도 용기를 낸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건강보험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제도”라며 “동남아시아, 아프리카는 물론 중남미 국가에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말했다. 성 이사장은 현재의 건강보험제도에 안주하지 않고 보장성을 넓히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젊은 의료인들에게는 “환자 편에서 환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