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박유경 씨는 “작가로 데뷔하니 글을 쓸 수 있는 광활한 원고지가 내 앞에 놓인 느낌”이라며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장편소설 부문 당선자 박유경 씨는 “작가로 데뷔하니 글을 쓸 수 있는 광활한 원고지가 내 앞에 놓인 느낌”이라며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낮에는 아기를 보고 밤에는 글을 썼어요. 밤이 깊어서 자려고 누우면 방금 쓴 글이 자꾸 생각나서 잠을 못 이룰 지경이었어요. 너무나 피곤한데도 글 생각에 불면증에 걸릴 정도였으니 그만큼 글쓰기에 깊이 몰입했던 것 같습니다.”

‘2017 한경 신춘문예’에서 ‘여흥상사’로 장편소설 부문에 당선된 박유경 씨(33)는 최근 1년여간 자신의 생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2014년에 낳은 첫아이를 키우면서 글쓰기에 매진하다 보니 잠마저 달아났다는 것이다. 2008년 대학을 졸업한 뒤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던 그는 2013년 회사를 그만두고 글쓰기에 집중해왔다. 박씨는 “올해 초부터 당선작을 구상해 여름께 완성했다”며 “이후 퇴고를 거듭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했다. 그는 “등단을 한다고 생각하니 광활한 원고지가 내 앞에 놓인 느낌”이라며 “불안과 자유를 동시에 느낀다”고 말했다.

박씨를 작가의 길로 처음 인도한 건 어린 시절 아버지의 서재였다. 책으로 빼곡한 그곳은 박씨에게 보물창고였다. 호기심에 놀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둑한 서재 구석에 앉아 책 삼매경에 빠지는 날이 많았다. 특히 재밌게 읽은 건 코넌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였다. 박씨는 “마치 책 속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박씨의 이번 당선작은 이 작품처럼 추리와 스릴러 요소가 있는 작품이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 수학 시간에 선생님 몰래 고전 소설을 읽을 정도로 문학을 탐독했다”며 “글 쓰는 일이 엄두가 안 나 일찍 시작은 못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원히 못 하겠다’는 생각에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작품을 썼다”고 말했다.

당선작은 박씨가 처음 쓴 장편소설이다. 단편소설을 주로 쓰다가 올해 장편으로 ‘전향’해 이번 당선작을 냈다. 단편은 분량이 짧아 박씨가 표현하고 싶은 서사구조와 의미를 모두 담아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 독자와 작품으로 보다 빨리 만나고 싶었던 이유도 있다. “단편소설은 단행본 독자를 만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거든요. 단편 한 작품으로만 책을 낼 수 없고 여러 편을 모아 작품집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그에 비해 장편소설은 등단하면 바로 책을 내 사람들의 평가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실제로 박씨의 이번 당선작은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다. 카카오의 모바일 콘텐츠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에도 연재된다.

박씨는 이번 당선작에 ‘선과 악에 대한 인간의 판단은 불완전해서 믿기 어렵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작품 속 등장인물 3명은 우연히 친구의 죽음에 휘말린다. 이들은 서로 책임을 미루며 ‘가해자는 너고, 나는 피해자(혹은 목격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누가 진짜 유죄고 무죄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의도는 이들의 머릿속에 ‘객관적 사실’에 대한 기억조차 서로 다르게 남겼다. 박씨는 “불완전한 자신의 선악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고 ‘우리는 선이고 너희는 악’이라며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재단하는 세태를 지적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박씨에게 글쓰기는 ‘사회와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일’로서 의미가 있다. 이번 작품이 그렇듯 앞으로도 사회적 메시지가 담긴 작품을 써나갈 계획이다. 그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현대사회의 문제를 탁월하게 다루는 영국 작가 세라 워터스, 인종 차별이나 빈부 격차 등 미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매력적으로 풀어내는 미국 작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롤모델”이라며 “인간과 사회의 본질에 깊은 관심을 두고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소설 당선작 '여흥상사' 줄거리

[2017 한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부문 박유경 씨 "낮에는 아기 돌보다 밤엔 글을 지었다…등단한다니 '광활한 원고지' 만난 느낌"
한 친구의 죽음에 관여했던 고교 시절 친구들이 8년이 흐른 뒤 다시 만나 그때의 일을 재연한다면? 누구의 진술을 믿을 수 있을까?

화자인 주은은 고교 시절 재우와 사귀면서 재우의 단짝인 영민과도 어울리게 된다. 영민은 그들의 모임을 ‘여흥상사’라고 불렀는데, 셋은 주로 영민의 집에 모여 미드를 보거나 무료함에 질식당하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학교에서 어떤 물건을 팔지 공모한다.

그러던 중 영민이 남자아이들 사이에서 ‘짱’으로 통하는 호수를 납작 눌러 제 아래에 두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되고, 재우의 주도 아래 향정신성 약을 호수에게 팔도록 하는 계획을 세운다. 호수는 셋이 예측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약을 판다. 인터넷에 판매 글을 올리고 재우 휴대폰 번호를 쓰는 등 영민과 재우를 자극한다. 계획이 어긋나자 발각될 두려움을 느낀 영민과 재우가 호수의 동생 호정까지 끌어들여 힘겨루기는 절정에 달한다.

어떻게든 일을 해결하기 위해 영민과 재우, 호수와 주은이 모두 영민의 집에 모인 날, 영민과 호수가 몸싸움을 벌인다. 그러다 순전히 우연에 의해 호수가 목숨을 잃는다. 셋은 호수의 죽음을 은폐해 버린다.

8년 뒤 영민이 다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주은은 재우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마음의 안정을 주는 남자 성일과 정상적으로 결혼할 수 있기를 바라는 상태다.

그런데 재앙처럼 등장한 영민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여 인적이 드문 자신의 옛집, 호수가 죽었던 바로 그 방을 호수가 죽은 날 그대로 꾸미고 재우와 주은을 불러들인다. 영민이 쓴 대본에 영민 자신은 호수의 죽음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처럼 그려져 있고, 호수 죽음의 진실은 모호함 속에 빠진다.

호수가 죽는 마지막 장면을 연기하고 난 뒤 셋은 영민이 꾸며놓은 밀실에 갇힌다. 주은과 영민, 재우는 또다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 놓이고 만다. 이 셋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목격자와 공범자, 선과 악, 쉽게 판단할 수 없는 경계에서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까?

※한경 신춘문예 당선 소설 '여흥상사'는 카카오페이지를 통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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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통보를 받고
"매번 바꿨던 필명…본명으로 쓴 첫 장편"

박이음, 박봄내, 박시유, 박그린, 박다현……. 데뷔를 하기 위해 단편을 응모할 때마다 나는 이름을 새로 지었다. 노동이라고 주장하며 단편소설을 썼지만 단 한 명에 뽑히는 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았다.

매번 이름을 짓지 않았다면 등기를 부치고 이미 발표가 났을 것을 알면서도 전화를 기다리는 그 지난한 과정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2016년 1월1일, 윤경이나 유정이라고 자주 오인받는 내 이름으로 낸 단편이 최종심에서 안타깝게 떨어진 걸 보고 ‘유경’이라는 이름으로 장편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단편은 내 가능성을 모두 보여주기에 지면이 좁다고 위로해야 했고 무엇보다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산 스스로가 안타까웠다. 나는 그제야 나를 받아들였다.

내 주변엔 내가 기억해야 할 소중한 이름이 많다. 오랫동안 함께 글을 써온 파이. 늘 글 쓰느라 골골대지만 100살까지 같이 가자는 약속을 지켜 나갔으면 좋겠다. 박상우 선생님과 강영숙 선생님,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끈질기게 쓰는 것으로 보답하겠다.

네가 원하는 건 이뤄지게 돼 있다고 말해주는 엄마 임창숙 님, 말은 주문이 되고 그 덕에 계속 글을 쓸 수 있었다. 아빠 박주관 님, 우리 형제들이 아빠를 기억합니다.

남편보다 더 든든하게 지원해주시는 시어머니를 만난 건 큰 행운이다. 방에 틀어박혀 글을 쓰는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남편 김도연, ‘엄마 같이 해!’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아들 김정원, 두 사람이 있어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한 감정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이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소중함이고 그 덕에 말의 어려움을 늘 가슴에 새긴다.

박유경 씨는 △1984년 울산 출생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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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평 성석제 정이현 구병모(이상 소설가), 김형중(문학평론가)

일상에 잠복한 불안 심리
죄의식에 대한 고찰 뛰어나


왼쪽부터 구병모 정이현 성석제 김형중 심사위원.
왼쪽부터 구병모 정이현 성석제 김형중 심사위원.
고단한 시대상의 반영인 듯 응모작의 상당수가 살인과 폭력을 소재로 삼았다. 자극적이라고 볼 수 있는 그 같은 소재들의 작동 원리를 고찰한 작품은 많지 않았고 피상적 접근에 그치거나 소비적으로 다뤄지는 경향이 있었다.

예심에서 올라온 소설은 ‘앤드루 메디컬 센터’ ‘유리세계’ ‘여흥상사’ ‘왈츠 No.2’ 등 총 4편으로 이 중 ‘유리세계’와 ‘여흥상사’에 대해 주된 논의가 이뤄졌다. ‘유리세계’는 가독성과 준수한 문장력이 돋보였으며 시간과 사건 배열 구성상의 특징이 두드러지는 한편, 종사하는 직업 세계에 대한 묘사 또한 현실 밀착도가 높았다. 그러나 숱한 도발적 표현들과 교훈의 직접 제시에 비해 우연에 의존한 허망한 결말이 어떤 주제의식을 관통하려는지 모호하다는 문제가 거론됐다.

당선작 ‘여흥상사’는 무난한 소설적 얼개를 갖추고 있으나 다소 산만하고 단조로운 대사와 반전이라기엔 어설픈 장치 등이 흥미를 잃게 하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여러 논의가 있었으나 20대가 처한 현실과 일상에 숨은 불안 심리를 다루는 태도, 죄책감에 대한 고찰 방식 등으로 봤을 때 이 결함은 극복돼 독자를 마주할 가능성이 좀 더 높다고 판단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전한다. 또한 모든 응모자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