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한 해의 끝 날과 새 날
‘올 데까지 왔구나./ 막다른 골목/ 피곤한 사나이가 홀로 서 있다.// 훤칠한 키에 창백한 얼굴/ 이따금 무엇엔가 쫓기듯/ 시계를 자주 보는 사나이/ 외투깃을 세우며 서성거린다.’

임영조의 시 ‘12월’의 첫 연이다. 생전에 ‘귀로 웃는 집’이라는 뜻의 이소당(耳笑堂)에서 늘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던 그도 한 해의 끝자락에선 자주 창백하고 쓸쓸했나 보다. ‘막다른 골목’ 어디메로 ‘올 데까지 온’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다음 구절에서 ‘꽁꽁 얼어붙은 천지엔/ 하얀 자막처럼 눈이 내리고/ 허둥지둥 막을 내린 드라마/ 올해도 나는 단역이었지./ 뼈빠지게 일하고 세금 잘 내는…’이라 했으니 그는 곧 우리 시대의 평범하고 성실한 소시민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 ‘단역’이어도 ‘무엇엔가 쫓기듯’ 바쁘게 열심히 살아온 각기 인생의 주연들이다. 못 다 이룬 꿈은 회한으로 남고, 슬픔의 잔뿌리도 그만큼 많다. 이렇게 사무치는 12월엔 그래서 ‘지우고 잊는’ 게 필요하다.

그가 ‘뒤돌아보지 말자./ 더러는 잊고/ 더러는 여기까지 함께 온/ 사랑이며 증오는/ 이쯤에서 매듭을 짓자’고 다짐하는 건 그냥 외면하거나 주저앉자는 게 아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입김을 불며 얼룩을 닦듯/ 온갖 애증을 지우고 가자’는 것이다. ‘이 춥고 긴 여백 위에/ 이만 총총 마침표 찍고’ 새 날을 준비하자는 것이다.

세모(歲暮)는 오는 해와 가는 해가 교차하는 때, 한 해의 끝 날과 새 날이 바뀌어 오는 시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밤이슬 젖은 땅에/ 미래의 수확을 한줌 가득 뿌리는 것을/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면서/ 그가 계절의 소중함을 얼마나 깊게/ 생각하는지 알겠다’던 파종의 시간, 씨 뿌리는 이의 장엄한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럴 때 ‘1월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마음’을 기억하고, ‘첫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개업날의 첫마음으로 손님을 맞는’다면, 내일은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질 것’(정채봉 ‘첫마음)이다. 여행을 떠나는 날 차표를 끊는 설렘같이. 그러면 나이를 먹어도 ‘댓잎 끝에서 떨어지는 이슬 한 방울 받아 새로이 한 살로 살 수’ 있으리라.

시인들뿐이랴. ‘한 해가 영원 속에 영영 묻혀가는 그믐이 되면/ 우리 중에 시인 아닌 사람/ 누가 있을까’(성찬경)라고 했다. 그러니 지난 세월의 그루터기에서 올라오는 새순처럼 새해를 맑게 시작할 일이다. 내일 다시 떠오르기 위해 지는 저 태양처럼.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