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일 대표 "서점의 주인은 책과 독자…내 집같이 꾸며야"
“책을 파는 사람이라고 해서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절대 아니에요. 저만 해도 애서가(愛書家)라고 하기엔 책을 너무 안 읽거든요. 책장수는 책이라는 아날로그 보물이 담긴 공간을 파는 사람입니다. 좋은 책을 쓰고, 펴내고, 즐기는 사람을 모두 모이게 하는 장소를 운영하는 게 제 일이거든요.”

최영일 영풍문고 대표(사진)는 지난 19일 서울 논현동 사무실에서 만나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9월 리노베이션한 종각 본점만 하더라도 국내 오프라인 서점 중 최대 규모인 1만585㎡, 최다 서적(약 45만권)을 자랑한다”며 “매출과 인지도에서 라이벌인 교보문고에 뒤진다 하더라도 영풍문고가 ‘서점다운 서점’이란 점에서는 결코 부끄럽지 않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가 처음부터 서점 운영에 몸담았던 건 아니다. 그는 원래 콘텐츠업계에서 약 30년 동안 일하다가 지난해 5월 영풍문고 대표로 영입됐다. 동국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이스트미시간대에서 국제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초대 대표로 임명됐고,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사장과 오로라월드 대표, 대원미디어 자문 등을 지냈다.

그는 “콘텐츠사업을 오래 한 경험이 서점 운영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어차피 이 일이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허브와 같은 역할이기 때문에 콘텐츠 생산자와 소비자, 서점 모두를 아울러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오프라인 대형 서점 1위 교보문고에 밀려 오랫동안 ‘2등의 설움’을 겪은 데 대해서도 담담히 설명했다. “매출 규모나 인지도로 따질 때 교보문고가 영풍문고보다 앞서는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인 게 맞습니다. 왜 그렇게 됐는지 솔직히 인정하는 게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서 꼭 필요하죠. 영풍문고는 상권 분석에 매우 취약했습니다. 교보문고가 종각과 광화문을 넘어 강남, 각지의 대형 쇼핑몰 등 새롭게 떠오르는 상권을 파고드는 동안 영풍문고는 지나치게 안주하는 경향이 강했죠.”

최 대표는 “영풍문고가 1992년부터 지금까지 24년 동안 계속 유지될 수 있었던 건 ‘영풍스러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영풍스러움’이란 언제 오든 한결같고, ‘내 집 같은 서점’의 모습으로 다양한 책을 즐기도록 하는 정신이다. “종각 본점을 리노베이션할 때 기존 문구류와 장난감, 전자제품 코너를 확 줄였습니다. 인테리어 변경 때 기존 가구도 별로 바꾸지 않았고요. 서점의 진정한 주인은 책과 독자잖아요. 이른바 ‘베스트셀러 매대 판매’도 많이 하지 않는 편입니다. 대신 그 자리에 다른 서점에선 보기 어려운 개성 있는 작품들을 놓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영풍문고는 온라인 부문은 알라딘, 예스24와 협업하고 있다. 최 대표는 “온라인 서점들과 전략적 제휴를 맺어야 영풍문고만의 오프라인 서점 중심 경영이 가능하다”며 “영풍문고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말했다. “종이책에는 전자책이나 컴퓨터에선 얻을 수 없는 특유의 느낌이 있어요. 게다가 종이책에서 얻는 기본 지식이 없으면 구글과 같은 온라인 포털사이트에서 자료 검색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머리에 지식이 있어야 검색도 가능하거든요. 영풍문고는 책을 비롯해 정보가 살아 숨 쉬는 모든 존재가 공존하는 곳으로 계속 성장해나갈 겁니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