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성과포럼’의 부대행사인 ‘산학협력 활성화 세미나’가 지난 22일 제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열렸다. LINC 사업에 참여한 대학 관계자들이 토론자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2016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성과포럼’의 부대행사인 ‘산학협력 활성화 세미나’가 지난 22일 제주 메종글래드호텔에서 열렸다. LINC 사업에 참여한 대학 관계자들이 토론자들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한국연구재단 제공
로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모교로도 유명한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ETH)는 매년 8월 ‘인더스트리얼 데이(industrial day)’를 연다. 제너럴일렉트릭(GE), 지멘스 등 내로라하는 수십개의 글로벌 기업이 ETH 교수들의 최신 연구 성과를 보고 듣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든다. 올해는 데이터 사이언스와 에너지, 식품혁명이 핵심 주제였다. 대학이 미래 기술의 청사진을 제시하고 기업은 실험실의 연구들을 산업화하는 선진형 산학협력의 전형으로 꼽힌다.

“새로운 산학협력 모델 찾아야”

산학협력은 한국의 경제성장 모델의 핵심 중 하나다. 1960년대 산업화와 함께 본격화됐다. 당시 기업들은 해외 기술을 모방해 사업화하는 ‘추격자’ 전략을 추구하고 있었다.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온 대학의 연구자들은 해외 선진기술을 기업에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선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대학이 양성해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학 연구 따로, 기업 현장 따로’ 현상이 산학협력의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에 따른 변화였다. 교육부 등 정부도 적극 나섰다. 2012년부터 시작해 올해 종료 예정인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LINC) 사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총 2153억원을 투입해 전국 대학에 산학협력을 위한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궁문 원광디지털대 총장은 “산업체 등 수요자 중심으로 산학협력 모델이 진화한 것은 큰 변화”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아직 멀었다”는 반응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불리는 미래 경쟁에 대비하려면 산학협력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2일 한국연구재단 주최, 한국경제신문사 후원으로 제주에서 열린 ‘산학협력 활성화 세미나’에서도 이 같은 지적이 쏟아졌다.

고혁진 한국산업기술대 교수는 “기술의 변화 속도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며 “기업이 원하는 인력을 공급해주는 수동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대학 스스로가 기업가적 사고로 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學)이 산(産)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새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최재붕 성균관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대학생들의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넣는 신(新)산학협력으로 진화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구글 직원의 평균 나이는 29세”라며 “한국은 기성세대를 살리기 위해 젊은 아이디어를 죽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중국의 차량호출 업체인 디디추싱의 성공 사례를 예로 들었다. “한국에선 우버 같은 아이디어가 기존 운수업자와의 마찰 탓에 사업화되기 어렵지만 ‘중국판 우버’인 디디추싱은 시가총액 33조원의 기업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정부 중매' 산학협력 그만…ETH처럼 기업이 찾아오게 해야"
“미래 산업 인력 양성해야”

박동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선임연구위원은 내년부터 5년간 약 2300억원이 투입되는 ‘LINC 플러스’ 사업이 산학협력 패러다임 전환에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 산업에 대비할 인재 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는 “알파고 충격 이후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의 중요성을 정부와 대학 모두 알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책 없이 표류 중”이라며 “빅데이터 전문가가 많아야 150명, 인공지능 관련 인력은 채 100명도 안 되는 게 우리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전문가들은 기업과 대학이 정부 예산에 기대 ‘공짜 점심’만 챙기는 구태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은 스스로 해야 할 신입사원 교육을 대학에 기대려는 경향이 있다는 비판을 듣는다. 대학도 정부 의존적이긴 마찬가지다. 조선·해양플랜트 분야가 대표적이다. 1990년대 조선업 호황 때 정부가 인력 양성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퍼붓자 각 대학들은 앞다퉈 조선 관련 학과를 늘렸다.

20여년 전만 해도 국내 조선공학과는 4개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2년제 대학을 포함해 40여개로 불어났다. 비슷비슷한 커리큘럼(교육과정)으로 배운 조선공학 전공자가 한 해에만 약 2200명이 배출된다. 김용환 서울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중국만 해도 이미 15년 전부터 대학 구조조정에 착수해 조선해양공학 교육은 상하이교통대, 우한공대, 하얼빈공대 3개 대학에 집중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