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범죄의 디지털 증거 찾기, 함께해야 할 글로벌 과제
유명인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독일 인터넷 사이트가 있었다. 독일 수사당국이 그 사이트 운영자의 인터넷 프로토콜(IP) 및 도메인 주소를 추적해 보니 실제 자료는 스웨덴에서 출발해 독일을 거쳐 아일랜드에 있는 아마존 클라우드 서버에 저장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 독일 수사당국은 법원의 영장을 발부받아 그 자료를 압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국제 사법공조 시스템 미비로 자료를 확보할 수 없어 더 이상 수사할 수 없었다. 이처럼 현대 범죄는 인터넷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고 있고 그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수사기관에서 압수한 피의자의 컴퓨터에서 사건 해결에 결정적인 문서파일이 발견됐는데, 피의자가 일절 모른다고 부인해 결국 그 문서파일을 증거로 사용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이는 소위 ‘전문증거’로서 자신이 작성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한 증거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문서 작성자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불합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5월 형사소송법이 개정(제313조 제2항)돼 문서 작성자가 그 문서를 일절 모른다고 하더라도 ‘과학적 분석 결과에 기초한 디지털포렌식 자료, 감정 등 객관적 방법으로 진정함이 증명되는 때’에는 증거로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디지털 자료를 증거로 활용하려면 검증된 디지털포렌식 도구로 디지털 증거를 확보해야 한다. 여기에서 디지털포렌식 도구의 인증과 검증이 문제가 되는데 현재 전 세계에서 미국 국립기술표준연구소(NIST)에서만 유일하게 디지털포렌식 도구를 인증하고 있다. 이 도구 인증 프로그램을 CFTT(computer forensic tool testing)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디지털포렌식 업체도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CFTT 인증을 청구하기도 한다.

이런 디지털 증거를 둘러싼 국제적인 협력 방안, 증거로 인정받기 위한 객관적인 요건, 디지털포렌식 도구 인증 등을 논의하기 위해 대검찰청은 지난 2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한국포렌식학회, 한국디지털포렌식학회와 함께 ‘디지털포렌식 국제학술대회’를 열었다. 미국, 독일, 일본, 한국의 디지털 증거 관련 실무 사례를 비교 논의하면서 발전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특히 디지털포렌식 도구 인증을 둘러싸고는 미국 디지털포렌식 도구 인증 담당자와 한국 업체들이 모여 협력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도 마련됐다. 이제 디지털 증거를 둘러싼 논쟁은 어느 한 나라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상황이어서 함께 고민하고 협력해 풀 수밖에 없는 글로벌 과제가 됐다.

지금은 사람의 많은 활동 흔적이 디지털 공간에 남는 그야말로 디지털 세상이다. 오직 진실 발견을 위해 노력하는 수사기관에서는 디지털 공간에서 폭넓게 증거를 수집하고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반면 개인의 활동자료 대부분이 디지털 공간에 남다 보니 범죄와 무관한 자료도 수사기관에 확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프라이버시 보호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이유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진실 발견의 필요성과 프라이버시 보호 법익의 충돌 양상을 해결하기 위한 디지털 증거법칙을 이제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국제적인 합의, 즉 글로벌 스탠더드를 눈여겨보면서 우리의 룰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지금 디지털 증거 및 사이버 수사 관련 유일한 국제협약은 유럽평의회 사이버범죄협약(일명 부다페스트 조약)이다. 일본은 2011년 가입하고 형사소송법도 이에 발맞춰 개정했다. 정보기술(IT) 분야에는 우리나라가 일본에 앞섰다고 생각하지만 국제협력, 법제도 측면에서도 그런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우리도 하루빨리 이 협약 가입을 검토하고 준비해 국제적인 흐름에 합류해야 할 것이다. 이는 디지털 세상에 대한 우리의 앞선 기술을 더 활용하고 글로벌 세상에 진출해 우리의 역량을 마음껏 펼치는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김영대 <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