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춘호의 논점과 관점] 틸러슨 아세요?
렉스 틸러슨 엑슨모빌 최고경영자(CEO)를 미국 차기 국무장관에 추천한 이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국무장관이던 콘돌리자 라이스다. 2006년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가 석유회사 22개를 모조리 국유화할 때 대부분 기업은 여기에 응했다. 하지만 틸러슨은 협상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베네수엘라를 국제중재재판소에 고소했다. 근거 없는 기업 강탈이라는 이유에서다. 재판소는 틸러슨의 손을 들어줬다. 라이스는 이 과정을 눈여겨보면서 틸러슨의 됨됨이를 알아봤다고 한다.

틸러슨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친분도 마찬가지다. 엑슨모빌이 사할린 석유를 개발하려 했을 때 파트너였던 러시아 국영 로스네프티가 줄곧 횡포를 부렸다. 그는 푸틴에게 직접 항의했고 푸틴은 엑슨모빌의 개발 프로젝트를 대통령령으로 공포하겠다고 화답했다. 하지만 틸러슨은 단호히 반대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대통령령은 법적 근거가 없어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푸틴은 화를 냈지만 결국 틸러슨의 말을 들었다.

틸러슨의 끈질긴 협상력에 기대

엑슨모빌 41년간 세계의 온갖 오지와 험지를 돌아다닌 것이 틸러슨의 저력이다. 각국의 전쟁이나 혁명을 경험하는 건 아주 흔한 일이었다. 그 속에서 반군 정부와 협상하고 독재 정권과 딜을 했다. 사할린이나 북극, 쿠르드 반군이나 차드 모두 그의 영업 전선이었다. 추방되는 사례도 많았다. 헨리 키신저가 각국과 공허한 말의 거래를 했다면 틸러슨은 실제로 돈을 걸고 더 치열한 딜을 해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시장의 역할과 계약에 관한 믿음은 그를 지키는 버팀목이었다. 그가 유럽의 러시아 경제 제재에 반대한 것도 이런 제재가 시장을 파괴하고 악순환을 불러온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트럼프가 틸러슨을 지명한 건 바로 이런 그의 엄격함과 끈질긴 협상력 때문이다. 트럼프가 즉흥적이라면 틸러슨은 계산적이고 트럼프가 직감이 빠르다면 틸러슨은 치밀한 논리로 대응한다. 어떻게 보면 포퓰리즘 정치가들이 가장 원하는 부하가 바로 틸러슨 타입이라고 할 수도 있다. 국무장관에 지명되고 나서 아직 인터뷰를 한 언론이 없을 정도로 말도 아낀다.

우파 同盟 과신하고 좌파는 부정

트럼프는 경제는 물론 각국 외교에서도 양자 협상을 하려고 한다. 양자 협상은 강국이 유리하다. 1 대 1 협상에서 자국의 핵심 이익을 충분히 얻겠다는 전략이다. 필요한 것은 지치지 않는 힘과 치열한 논리다. 트럼프가 틸러슨을 최대한 활용할 것으로 보는 이유다.

중국의 남중국해 진출이나 북핵 문제, 시리아 문제 등 지금 트럼프 앞에 놓인 과제들은 결코 간단치 않다. 무엇보다 ‘미국 우선’이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외교노선이다. 새로운 질서를 태동시키는 패러다임 시프트가 보인다. 이 패러다임에 일본은 벌써 유연하게 적응하고 있다. 손정의가 트럼프를 만나 미국에 대한 초대형 투자를 약속했고, 일본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은 미국 철도회사를 3조5000억원에 인수할 계획이다.

지금 한국은 트럼프 외교에 마냥 손을 놓고 있다. 우파는 한·미 동맹을 과신하고 좌파는 동맹을 경시하거나 애써 부정하려 한다. 아예 세계의 변화에 눈을 감고 있다. 4대 강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초강성이다. 한국은 술에 취해 늦은 밤 뒷골목을 헤매고 있다.

오춘호 논설위원·공학박사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