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작은 오솔길 지나 녹차 온천 품에 안겨 지친 마음을 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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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규슈 사가현 온천 여행

미끈미끈한 물이 생기 있는 피부를

와라쿠엔 료칸(warakuen.co.jp)에선 별채에 머물렀다. 별채에는 투숙객만 이용할 수 있는 고즈넉한 노천온천탕이 있다. 탕 입구에 ‘입욕 중’이라는 간판을 걸고 나면 완벽한 개인시간이 보장된다. 탕에 들어가자마자 놀랐다. 점액처럼 미끈미끈한 물에 피부가 보드라워지는 것을 경험한 어머니는 연신 감탄사를 연발했다. ‘일본 3대 미용 온천’이란 명성 그대로다.
료칸에 간다면 새벽에 한 번, 오후 느지막이 숙소에 들어와서 또 한 번, 잠자리에 들기 전 한 번, 최소 세 번 목욕하는 것이 기본이다. 료칸에 머무르는 동안 부모님은 객실, 별관, 본관의 탕 세 곳을 오가며 마음껏 목욕을 즐기셨다. 본관의 노천탕은 녹차온천이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따뜻한 온천물에 몸을 담그니 뭉친 근육이 풀리면서 스트레스가 저만치 달아난다.
저녁에 맛본 가이세키도 흠잡을 것이 없었다. 아이스크림처럼 부드러워 입 안에서 눈 녹듯 사라지는 두부, 씹는 맛이 일품인 소고기, 제철 채소와 생선찜 요리 등은 꽤 맛있었다. 유카타만 입고 생활하자니 여벌옷도 필요 없었다. 다음부턴 짐을 단출히 꾸리고 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라쿠엔은 한국인을 배려해 한국인 직원을 채용하고 있어서 큰 불편함도 없었다.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종일 온천을 하고 녹차를 마시며 한적한 시간을 보내고 있자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온천과 다채롭고 볼거리가 많은 다케오
우레시노에서 어느 정도 피로를 풀고 다케오로 이동했다. 다케오는 1300년 전부터 이어져온 유명 온천지역이다. 1915년 건축된 ‘로몬’이 마을의 상징으로 자리한다. 건물은 도쿄역과 일본은행 본점을 설계한 사가현 출신 유명 건축가 다쓰노 긴고가 지었다. 다케오에는 소소한 볼거리가 많다. 사시사철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수 있는 정원인 미후네야마라쿠엔, 다케오를 유명하게 만든 다케오 시 도서관, 3000년 넘은 녹나무를 지나는 아름다운 올레코스 등이다. 다케오의 명물은 사가의 소고기로 만든 도시락이다. 거대한 녹나무 아래에서 도시락을 펼쳐놓고 가족과 이야기꽃을 피운 것은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을 만했다.
교토야(saga-kyotoya.jp)는 다케오에 있는 료칸 중 꽤 독특한 곳이다. 1910년 개장한 이래 주인은 5대째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내부의 로비는 중후하면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품이 많았다. 오래된 가구와 축음기, 오르골 등이 놓여 있어 박물관에 온 듯한 기분도 들었다. 오르골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나이 든 직원이 다가와 연주를 들려줬다. 내 키 정도로 큰 오르골에서 재생되는 선율은 묘했다. 과거의 시간이 기계에서 흘러나와 로비를 채우는 느낌이랄까. 료칸 입구에 주차된 클래식 자동차도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고객 송영과 맞춤 여행에 사용되는 것이라고 한다. 교토야 료칸에선 골동품 전시장 같은 독특한 인테리어 외에 전시, 콘서트 등 다양한 문화행사도 열린다.

일본여행을 그리 내켜 하지 않으시던 아버지는 소도시의 깔끔한 거리풍경, 소박하고 검소한 사람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몸소 경험하신 뒤 어느 정도 마음이 바뀐 것 같았다. 어머니 역시 깁스로 힘들었던 여름을 충분히 보상받았다. 무엇보다 큰 대나무가 휘어진 작은 오솔길을 따라 두 분이 손잡고 걷는 모습은 아마 계속 생각나지 않을까.
규슈=조은영 무브매거진 편집장 travel.cho@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