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 계란을 크기대로 나열하면? ①대란 ②특란 ③왕란 ④중란. 중란을 빼고 다 크다는 의미 아닌가. 큰 순서로 왕란(68g 이상), 특란(60g 이상), 대란(54~60g) 순이다. 대란도 모자라 그 위에 두 단계나 더 있다. 닭고기는 ‘대’ 위에 ‘특대’가 있고, 소고기는 1등급 위에 1+, 1++가 또 있다. ‘크다(大)’만으로도 부족한가 보다.

부풀려 말하기는 예전부터 흔했다. 성적표의 수우미양가는 무엇 하나 안 좋은 게 없다. 슈퍼마켓도 실상은 구멍가게의 변신이다. 슈퍼보다 훨씬 큰 가게는 한때 ‘하이퍼(hyper)마켓’으로 불렀다. 조그만 단체도 총재, 회장, 사무총장이 있고 몇 명만 모여도 명칭은 하나같이 특별위원회 아니면 최고위원회다. ‘특별함(特)’에 대한 한국인의 선호는 유별나다. 하긴 서울부터가 ‘특별시’이고 설렁탕도 ‘특’이어야 먹을 만하다.

사람들의 언어습관은 유리하다 싶을 때 뭐든지 부풀리고 띄운다. 언어의 인플레이션이다. VIP로도 모자라 VVIP라는 콩글리시를 만들어 냈다. 오죽하면 참기름을 ‘100% 진짜 순 참기름’이라고 외쳐야 가짜가 아니라고 알아주나 싶다.

반면 방언이나 속어는 최소화하려는 언어의 디플레이션이 일어난다. 사투리는 대개 표준말보다 짧게 말한다. 표준말 ‘춤추실래요?’가 경상도에서 ‘출래예?’, 충청도에선 ‘출류?’로 더 줄어든다. 경기고는 그냥 경기고인데 대구 경북고, 부산 경남고, 창원 경상고가 모두 ‘경고(또는 겡고)’다. 전라도에선 길게 말할 것도 ‘거시기’나 ‘껄쩍지근’으로 다 통한다.

또래집단의 속어는 점점 짧아진다. 문자메시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글자 입력하는 수고를 줄여도 뜻만 전달되면 그만이다. “생파는 버정 앞 배라에서”를 해독할 어른이 얼마나 될까. “생일파티는 버스정류장 앞 배스킨라빈스에서 하자”는 얘기다. 초등학생들조차 ‘안물(안 물어봤어)’ 등의 속어를 입에 달고 산다. 젊은 주부들은 ‘#G(시아버지), 셤니(시어머니), 능청남(능력 있고 청소 잘하는 남편), 얼집(어린이집)’이라면 다 통한다.

사실 영어권에서도 before가 ‘B4’로, Oh my god은 ‘OMG’로 줄인다. as soon as possible은 ‘ASAP’로도 길다고 ‘A#’이라고 쓴다. 바쁜 세상에 말 줄이기는 세계 공통인가 보다.

사람의 언어에도 경제원리가 작용한다. 과장할 때는 점점 인플레가, 평소 소통에선 디플레가 일어난다. 발음과 표기에서도 마찬가지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 효과를 내려는 ‘언어의 경제학’이라 부를 만하다. 한데 말 속에 담긴 기의(記意)는 점점 거칠고 질이 떨어지니 어쩌나.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