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외교부는 당국자 세 명이 한꺼번에 모여 백그라운드 브리핑(익명 조건으로 배경 설명)을 했다. 긴급한 사안이 아닐 땐 한 명이 나와 브리핑하는 게 보통인데, 이날은 이례적이었다. 브리핑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인해 정상외교에 공백이 생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마련됐다.

한 당국자는 향후 정상외교 일정을 묻자 “내년 상반기 우리 정상의 해외순방 계획은 없으며 해외 정상급 인사의 방한 요청도 없다”고 말했다.

이날 브리핑이 끝나고 관련 보도가 나온 지 30여분 만에 고위당국자가 황급히 브리핑을 다시 했다. 그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을 뿐 정상외교 일정이 한 건도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이어 “내년 1월 말은 돼야 정상외교 일정이 정해지는데 내년 상반기 방한을 희망하는 나라는 7~8곳”이라고 해명했다. 이 당국자는 ‘외국 정상이 방한하고 싶다 해도 미뤄질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럴 수도 있고 일부는 (정상회담을) 할 수도 있다”는 모호한 답을 내놨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 정상외교를 수행할 수도 있지만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당시의 전례에 비춰볼 때 적극적인 활동은 어렵다는 것이 외교가의 중론이다. 2004년 당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은 외교 일정 상당수를 뒤로 미뤘다. 대통령 탄핵 국면을 맞아 정상적인 외교 일정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명확히 구분해 대응하는 게 상식이지만, 외교부는 ‘정상외교 공백’에 유독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연내 개최가 무산된 한·중·일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외교부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회담이 내년 초 열린다면 황 권한대행 참석 여부를 정해야 하는데 당국자는 “의장국인 일본 측의 제안이 오면 (그때)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조만간 3국 간 의견 조율을 시작할 수도 있고, 그러면 황 권한대행의 참석 문제는 ‘발등의 불’이 되는데도 “정상외교 공백은 없다”고만 외치는 외교부의 안이한 태도가 우려스럽다.

박상익 정치부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