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 개편과 대선 구도 재편 흐름이 빨라지고 있다. 내달 2일 또는 9일 국회에서 이뤄질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이후 개헌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각 정파들의 연대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권은 개헌 찬성파와 반대파로 갈려 있다. 개헌 찬반은 대선 구도와 직결돼 있다. 개헌파들은 개헌을 연결고리로 제3지대에서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헌에 부정적이다. 개헌 반대와 찬성은 대선구도를 ‘친문(친문재인) 대 비문(비문재인)’으로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

탄핵 정국에서 맨 먼저 개헌론에 불을 지핀 것은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다. 김 전 대표는 “최순실 사태보다 100배 중요한 게 개헌”이라며 개헌을 지렛대로 정치권 새판 짜기 구심점이 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제3지대의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 26일 만나 개헌 필요성에 공감한 뒤 ‘친박(친박근혜)·친문 패권주의’에 대응하는 대안(代案) 정치세력을 형성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또 개헌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원탁회의’를 열어 구체적인 추진 방향을 논의하기로 뜻을 모았다.

김종인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등 민주당 내 개헌에 우호적인 비문 세력들의 제3지대 합류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종인 전 대표는 지난 21일 손 전 대표 주최 토론회에서 “최근의 현실을 보고도 이런저런 핑계로 개헌 논의를 안 하려는 정치 세력이 있다”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문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다.

개헌이 내년 대선 전까지 이뤄지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문 전 대표가 반대하는 데다 개헌 논의가 탄핵 동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또 개헌 시점과 방향에 대해 각 정파 간, 대선 주자들의 생각이 다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5일 수원 지역 대학생과의 간담회에서 “개헌을 하자는 주장은 보수정권 연장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 개편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며 “박 대통령과 공범이었던 새누리당의 책임을 물타기하자는 게 담겨 있다”고 말했다.

박지원 비대위원장을 비롯한 국민의당 의원들은 대체로 개헌에 찬성하는 기류다. 다만 안철수 전 대표는 최근 “박 대통령이 물러나고 질서 있게 수습하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일단 선을 그었다. 남경필 경기지사도 27일 “대통령 탄핵에 집중해야 할 이 시점에 개헌 논의는 적절치 않다”고 했다. 개헌 찬성파들 사이에서도 개헌 시점을 놓고 내년 대선 이전과 다음 정권 초반 등으로 갈려 있다.

개헌을 축으로 하는 정계 개편의 최대 변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선택이다. 반 총장이 지지율이 급락한 새누리당으로 갈 가능성은 낮아졌다. 민주당엔 문 전 대표가 버티고 있다. ‘권력 분점형’ 개헌을 매개로 안 전 대표나 김무성 전 대표와 손잡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다. 외교관 출신인 반 총장이 외치(外治)를 맡고, 안 전 대표나 김무성 전 대표가 책임총리로서 내치(內治)를 담당하는 그림이다. 역대 대선에서 제3의 정당이 등장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는 점에서 반 총장이 선뜻 이런 선택을 하겠느냐는 반론도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