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성숙하고 아름다운 프로페셔널이 없는 사회
오래전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하루에 여덟 시간 그림을 그리는 프로페셔널 화가다. 프로페셔널 화가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기분 내킬 때 멋있는 선을 하나 죽 긋는 게 아니라 하루 종일 피땀 흘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어떤 직업인들 그렇지 않으랴.

그런데 이 어이없는 세상은 생각보다 전문가가 아닌 아마추어들이 곳곳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다. 매 순간 불안하기 짝이 없던 요즘, 며칠 전 아침 갑자기 고모님이 돌아가셨다. 자매처럼 지내는 사촌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도 나는 당장 달려갈 수 없었다. 마감 시간이 다 돼 원고를 써서 넘겨야 하는데, 아직 다 못 쓴 까닭이었다.

문득 나는 오래전에 본 ‘도쿄 타워’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날 영안실에서 주인공은 원고 마감 독촉전화를 받는다. 이런 날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편집자에게 막 화를 내는 주인공에게, 어린 시절의 젊은 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나 빨리 원고를 써서 마지막으로 보여 달라고 하신다. 그 장면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났다. 이를테면 글을 쓰는 사람에게 아무리 큰일이 나도 원고 마감은 보내야만 할 삶의 형식이요 의무다. 원고 마감의 스트레스를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아니 세상의 모든 일이 다 원고 마감과 같으리라. 말하자면 프로페셔널이란 사사로운 감정이나 개인적인 관계에 휘둘리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아무리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운동선수는 경기를 끝마쳐야 하고, 바둑을 두는 프로기사도 끝까지 바둑을 두어야 한다. 가짜 그림이 나돌 때 아무리 화가 나도 내 그림이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하며, 아무리 아들이 살인을 저질렀어도 아들이 범인이라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 프로페셔널 경찰이다.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다수의 큰 아픔과 기쁨을 위해 내 작은 아픔과 기쁨을 포기하는 사람이 바로 프로페셔널이다. 그런데 바른 세상을 위해 예술가나 운동선수나 의사나 프로바둑기사보다 제일 중요한 프로페셔널 정치가들의 황당한 모습들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동안의 대통령들마다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게 떠오르고, 다들 자신이나 자식들이나 친인척 비리로 얼룩진 뒤끝을 보여주고 떠났다. 욕을 먹더라도 할 일은 하는 진짜 프로페셔널 대통령은 누구였을까. 유독 그 선한 표정이 잊히지 않는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만들면 내가 책임지겠다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북한 핵 만들기의 위험성을 간과했다.

우리는 늘 죽은 자를 그리워한다. 남북통일을 그렇게 쉽고 아름답게 생각한 노 전 대통령이나 측근의 비리는 눈감고 자신만 바르면 된다고 믿은 박근혜 대통령이나 안타까운 것은 마찬가지다. 어쩌면 대한민국 사회는 성숙하고 아름다운 프로가 너무 부족한 사회다. 예술가나 사업가나 정치가, 아니 시민조차도 그렇다. 임기 말 대통령은 죽거나 나쁘거나 해야만 하는 사회, 그렇다면 대통령이 그렇게 되도록하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과거의 아니 다음에 올 다른 대통령들도 시스템이 이대로라면 다 종류가 다를 뿐, 단 한 사람도 그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 중요한 정치마저도 프로페셔널이 아닌 이 한심한 세상을 살면서, 앞으로 우리는 프로 대통령을 어딘가 다른 나라에서 돈 주고 사와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