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대관 업무에 바쁜 스타트업 CEO들
최근 한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사장과 저녁 약속이 있었다. 그는 약속에 20분가량 늦었다. 국회에서 규제를 풀어달라고 읍소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정부세종청사도 빈번히 드나드는 눈치다. “사장님이 돼서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도 만나고, 좋으시겠어요”라는 실없는 농담을 했다가 푸념만 들었다. “한창 회사를 키워야 하는데, 자꾸 길에서 시간을 버립니다.” 이 사장은 아직 30대 초반이다.

배달의민족, 요기요 등 배달 앱(응용프로그램)업체들은 요즘 정부 심부름에 바쁘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배달하는 음식의 원산지 표시를 전부 앱에 올리라고 했기 때문이다. 소비자 안전을 위해 필요한 조치긴 하지만, 문제는 음식점별 원산지 조사까지 전부 업체들에 떠넘겼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배달 앱 직원들은 등록된 20만여개 식당에 원산지를 알려달라는 연락을 계속 돌리고 있다. 하지만 등록이 의무화된 20개 식재료 원산지를 온라인에 올리는 과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컴퓨터나 인터넷에 익숙지 않은 식당 주인도 적지 않아 배달 앱 직원들만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처음엔 음식 사진보다 원산지를 앱에 크게 표시하라는 지시가 내려와 이를 놓고 협상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전자 자동차 등 기존 산업의 성장세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젊은 창업가들의 기업가정신과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규제와 정부 간섭은 스타트업이 신산업을 만들 때마다 촘촘히 옭아맨다. 가상현실(VR) 체험기기, 드론, 퍼스널모빌리티, 개인 간(P2P) 대출…. 정부 규제에 막혀 꽃피우지 못하고 있는 신산업은 부지기수다.

그러다 보니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정부에 목소리를 내는 것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협회를 만들고 국회 등을 찾아다니며 입법 로비를 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과거에도 꽉 막혀 있던 정부가 요즘 ‘최순실 사태’로 더욱더 움직이지 않는다. 이게 한국 창업 생태계의 현주소다.

남윤선 IT과학부 기자 inklin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