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트럼프 등 악재 겹쳐…'기초체력'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세
전문가들 "구조개혁 마무리하고 내수서 성장동력 찾아야"

정책팀 = 한국경제가 사상 첫 3년 연속 2%대 저성장에 머물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탁금지법, 조선·해운 구조조정 등에 더해 최근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까지 악재가 꼬리를 물고 있기 때문이다.

저조한 실질성장률이 저출산·고령화와 맞물려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 하락을 가속할 수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체질 개선과 함께 경제 주체 전반에 드리운 불안 심리를 걷어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겹겹이 쌓이는 대내외 리스크…한국경제 발목 잡을까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은 당장 내년 한국 경제 성장률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중요한 변수다.

공약은 공약에 그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시절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 등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기조를 드러내 보였다.

트럼프 당선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등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면서 한국경제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프랑스의 금융그룹 BNP파리바는 대미 수출 비중, 총신용 등 변수를 분석해 트럼프 당선에 따른 한국의 취약성 지수를 신흥국 20개국 중 세 번째로 높은 66점으로 산출했다.

그만큼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가 한국경제에 큰 타격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스탠다드차타드는 "한국 수출에서 미국의 비중은 13%로 중국(31%)보다 낮지만 중국과 달리 미국은 대부분 최종재를 수입하고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며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로 한국경제에 부정적 영향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트럼프의 나프타 재협상 계획이 최근 언론에 보도되면서 멕시코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 비상이 걸리는 등 우려는 이미 현실화하고 있다,
기아차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멕시코에 진출한 국내 자동차·전자 업종 기업들 대부분은 생산물량의 70% 이상을 미국 등 북미로 수출하고 있다.

이런 안팎의 우려와 달리 정부는 수출을 내년 경기 상방요인 중 하나로 꼽는 등 트럼프 당선에 따른 영향을 과소평가하는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상목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내년 수출은 지난해나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라며 트럼프 당선 이후 불확실성 해소에 따른 심리 개선 등 기회 요인이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장기화로 접어들고 있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도 한국경제에 그늘을 드리우는 요인 중 하나다.

씨티그룹은 최순실 사태에 따른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실물경제 영역에서 전반적으로 민간심리가 위축돼 4분기 성장률 둔화 폭이 커지고 경기회복세가 지연될 소지가 있다고 내다봤다.

또 이번 사태로 국회의 내년 정부 예산안 심사가 지연되고 기업 구조조정과 경제개혁 추진 여력이 제한될 것으로 우려했다.

트럼프·최순실 변수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상, 조선·해운 구조조정, 청탁금지법 등 이미 산재한 악재들과 맞물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이처럼 경기 하방 요인만 누적되는 탓에 정부의 경제성장률 전망 하향은 사실상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지난 6월) 내년 성장률을 3%로 전망했지만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 경향과 함께 국내 정치적 불안정에 따른 소비와 투자 등 내수 위축 가능성이 있어 성장률이 예상보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 사상 첫 3년 연속 2%대 성장 '코앞'…저성장 고착화 되나

한국은 지난해 성장률 2.6%를 기록했다.

올해의 경우 정부(2.8%) 역시 2%대 성장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문제는 내년이다.

아직 한국개발연구원(KDI)과 정부의 공식 전망이 나오지 않았지만 한국은행은 물론 주요 민간연구기관 대부분은 내년에도 한국경제가 2%대 성장에 머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세계은행 등에 따르면 1961년 이래로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3년 연속으로 3%를 밑돈 적은 없다.

2012년 이후 6년간 경제성장률을 살펴보면 2014년(3.3%)을 제외한 나머지 5년간 모두 2%대였다.

한국경제가 저성장의 '늪'에 빠졌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성장률 전망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 자체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잠재성장률은 한 경제가 보유한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이다.

많은 연구기관과 전문가들은 최근 한국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2%대로 내려간 상황에서 뚜렷한 호황이 아닌 이상 3%대 성장률을 기록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을 2.8%로 낮추면서 이전에 3%대 초반으로 추정했던 잠재성장률이 그보다 더 떨어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은 잠재성장률이 2016∼2020년 연평균 2.5%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현재 잠재성장률을 2%대 후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요인 중 하나로 저출산·고령화를 꼽고 있다.

생산가능인구(15∼64세 인구)는 증가 속도가 점점 줄어들며 급기야 내년부터 감소세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 총량 자체가 줄어드는 셈이다.

경제활동인구의 연령층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면서 청년층이 줄어드는 점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아울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가계가 노후 준비를 위해 소비를 줄이면서 기업의 수익성이 줄고 이는 다시 기업의 투자 감소로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다.

문제는 저출산·고령화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문제여서 잠재성장률 하락세가 당분간 불가피하다는 점이다.

이제는 2%대 성장 고착화를 자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KDI는 인구변화 추세로 비춰볼 때 2026∼2030년에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8%까지 떨어질 것으로 분석했다.

지금은 저성장이라고 부르는 2%대 성장률도 감지덕지해야 하는 상황이 곧 닥칠 수 있는 셈이다.

◇ 전문가들 "내수서 성장동력 찾아야…일부 구조개혁이라도 마무리 필요"

전문가들은 이대로 가다간 우리 경제의 성장률이 1%대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하고 있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는 "트럼프 당선, 청탁금지법, 최순실 게이트 등 세 가지 변수 때문에 국가 전체가 불안한 느낌"이라며 "소비 심리까지 위축돼 내년 성장률이 2%대를 넘어 1%대로 떨어질 우려도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실질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자꾸 밑돌면 잠재성장률 자체가 떨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경제 체질 개선뿐만 아니라 당장 한국경제에 드리운 불안감을 제거하는 작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세계 경제 성장의 트렌드가 수출 중심에서 내수·서비스업으로 바뀌면서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수출 충격을 내수가 흡수하지 못하면서 성장률 자체가 떨어지는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에 불리한 세계 경제 흐름은 일시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내수에서 성장 화력을 찾는 노력을 기울이고 정치적 불확실성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트럼프노믹스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과의 접촉을 강화하고 내수를 고려해 청탁금지법 개정작업이 필요하다"며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서는 원포인트 인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만이라도 경제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하고 부동산·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위기 방지용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그동안 하던 일부 구조개혁 과제를 마무리하고 경제 차원에서라도 대외 활동을 강화해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세종=연합뉴스) roc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