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포럼] 남들이 공포에 질릴 땐 탐욕을 부려라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미국 대통령 당선 충격은 다행스럽게 반나절(?) 소동으로 진정됐다. 사실 그의 정책 공약을 유심히 살펴보면 우리에게는 기회와 위기가 반반이라 호들갑 떨 일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국내 상황이 더 문제다. 초유의 정치 스캔들로 국정이 마비됐다. 설상가상으로 경제위기설이 줄기차게 유포된다. 몇 개월 사이 언론 헤드라인도 나쁜 소식 일색이다. ‘갤노트7’ 리콜 사태, 비상경영에 돌입한 현대자동차, 해운과 조선업 구조조정 등 대기업의 침체가 불안감을 더한다. 투자가들에겐 참 어수선한 시기다.

해외 투자나 대체투자가 대안으로 떠오르지만 수익률과 위험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다. 부동산 펀드는 당장 수익은 높지만 상투 잡기가 아닌지 걱정이다. 물론 국내 증시는 실망스럽다. 코스피지수가 금융위기 이후 2000포인트에 갇힌 지 벌써 8년이다. 그런데도 도무지 탈출할 낌새가 없다. 어쩌면 동력을 상실한 인공위성처럼 추락할 날만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잘나간다는 펀드에 돈을 넣어 봤지만 결과는 아주 쓰다. 주식투자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그런데 위로가 될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주가 움직임이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첫 번째로 조선업이 최악의 상태이던 지난 1월 현대중공업 주가는 7만9400원으로 8년 만에 최저가를 찍었다. 그러고 나서 16만6000원(11월16일 장중)으로 100% 이상 상승했다. 또 다른 조선업체 삼성중공업은 5월24일 7221원으로 최저 시세를 기록한 뒤 1만400원(10월14일 장중)으로 50% 상승한 다음 9000원대에서 조정 중이다. 두 번째로 이보다 더한 불황에 몰린 해운업의 경우 현대상선은 8월26일 6420원으로 최저가를 기록한 뒤 9500원(10월14일 장중)까지 50% 오르기도 했다. 세 번째로 글로벌 경기 침체와 중국 철강업체의 공급 과잉으로 조선업 못지않게 고난의 행군을 하던 포스코도 1월21일 15만5500원으로 바닥을 기록한 뒤 최근 26만원(11월15일 장중)으로 70% 상승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비슷한 경로를 밟고 있는 석유화학, 반도체 업종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업종이나 기업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을 때-물론 생존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해당되지만-주식을 사야 한다는 매우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준다. 주식시장에서 끝없이 인용되는 격언이지만 주가는 공포 영역으로 들어가면 청산가치 이하의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광풍이 불면 네덜란드 튤립 투기처럼 뿌리 하나 값이 집 한 채 값에 거래될 정도다.

업종에 대한 공포감이 절정이던 올초 조선업, 해운업, 철강업의 주가는 청산가치보다 한참 싼 폭탄세일 가격이었다. 이후 위기감이 어느 정도 가시면서 ‘경기 회복 여부와 상관없이’ 주가는 최소한 청산가치 이상으로 반등했다. 지금 대한민국 경제가 위기라고 한다. 정치도 위기다. 트럼프 당선과 브렉시트로 대외변수도 최악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주식을 사야 하는 시점이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것이다.

나쁜 소식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 상장회사의 세전 영업이익은 13% 정도 증가해 거의 100조원 가까이 된다. 당연히 세금도 사상 최대로 많이 걷혔다. 증시 펀더멘털의 건강성을 나타내는 상장회사의 재무건전성과 이익증가율 그리고 배당성향은 2011년 이후 최고다. 또 올해 기업들의 현금보유액은 450조원으로 사상 최고다. 무역수지도 불황형 흑자라고 하지만 10월 말 765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주식투자 관심도는 아주 냉담하다. 마치 최악의 바닥을 지나던 조선업, 해운업, 철강업을 바라보는 듯하다. 재테크의 기본은 남들이 탐욕을 부릴 때 공포에 질리고, 남들이 공포에 질릴 때 탐욕을 부리는 것이다. 이 오래된 격언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