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민 '종교후계자' 지목한 최순실과 1976년 처음 만나
"박 대통령 정계진출 후에도 최순실이 친구·참모 역할 계속"
박지만·측근들이 말렸지만 최순실이 추천한 사람 중용하기도
박 대통령, 2007년 '최순실 국정농단' 제기되자 "천벌받을 네거티브" 반박
여당 관계자 "박 대통령 삶에서 최순실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도 의아해하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최씨와의 관계에 대해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 인연’만으로 국정 최고책임자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위법을 감수하면서 국가 주요 문서를 건넬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한 관계자는 26일 “박 대통령의 삶에서 최씨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며 “동생인 박지만 씨와 대통령 주변에서 최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여러 차례 얘기했지만 박 대통령은 이를 듣지 않고 음성적인 만남을 계속하다 이런 화를 불렀다”고 말했다.
청와대와 여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뒤에도 최씨와의 인연을 끊지 못한 것은 부모를 총탄에 보낸 기구한 개인사와 무관치 않다. 육영수 여사 사망 후 박 대통령은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며 힘든 시기를 보내던 차에 최태민 씨가 위로편지를 보내면서 정신적 멘토가 됐다. 최씨는 승려 경험도 있는 사이비종교 교주에 가깝다는 얘기가 많다.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최 목사가 딸과의 친분을 내세워 정·재계 인사들과 접촉해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는 중앙정보부장의 보고를 받고 최씨와 딸을 불러 추궁했다. 하지만 딸은 최씨의 결백을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중앙정보부장)는 나중에 항소이유서에 “최태민을 처벌해달라고 했지만 박정희가 듣지 않았다. 그 실망이 박정희 제거의 한 가지 이유”라고 주장했다. 김재규에 대한 박 대통령의 적개심과 배신감에 비례해 최씨에 대한 믿음이 더 굳어졌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최순실은 최씨의 다섯째 부인의 딸이다. 최씨는 ‘영적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자식들 중 최순실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1976년 즈음에 박 대통령에게 소개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의 40년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1982~1991년)을 맡을 때다. 최씨 가족이 재단을 이용해 부정축재를 한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박 대통령의 두 동생은 1990년 노태우 당시 대통령에게 “언니(박 대통령)가 최태민에게 속고 있으니 언니를 구출해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이듬해 박 대통령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동생들에게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박지만 씨는 누나와 최순실의 관계에 대해 “피보다 더 진한 관계”라며 한탄했다.
부모를 잃고 남은 형제들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지면서 최씨 일가와 박 대통령의 관계가 더 깊어졌다는 게 주변의 설명이다. 박 대통령이 1998년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최순실은 친구면서 집사, 참모 역할을 해왔다는 게 정설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이명박 후보 측이 “박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최씨 일가에 의한 국정 농단 개연성이 없겠느냐”고 하자, 박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네거티브하는 것은 천벌받을 일”이라고 최씨를 두둔했다.
국회의원 시절에도 주변에서 “최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지만 박 대통령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최씨가 천거한 사람(정호성 부속비서관)을 중용했다.
한 소식통은 “박 대통령은 최씨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