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경제팀 무능론…한국만 갖고 있는 '고질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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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국가 정책 무력화 명제 봉착
구조조정 통해 완충능력 확보 중요
현 경제팀 무능론 민감할 필요 없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구조조정 통해 완충능력 확보 중요
현 경제팀 무능론 민감할 필요 없어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요즘 우리 국민 사이에서 ‘경기가 외환위기 때보다 어렵다’ ‘경제정책은 무엇 하나 되는 게 없다’는 불만이 많이 들린다. ‘정책 무력화(policy ineffectiveness)’ 명제다. 한국만이 아니라 대부분 국가도 정부가 경기부양을 목적으로 어떤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경제주체가 좀처럼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몰리고 있다.
경기부양 대책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주력해온 통화정책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여김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 간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 공급→금리 인하→총수요 증가→경기 회복)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금리를 추가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각국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기준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낮게 나온다. 한국의 기준금리 1.25%도 적정금리 1.8%(존 테일러 교수 추정)보다 낮은 수준이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적정수준보다 훨씬 낮게 기준금리를 떨어뜨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방안(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까지 추진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민간부채 증가 등과 같은 경제주체의 현금흐름상 문제로 또 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도 중앙은행 총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통화정책이 무력화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가 돼 경기부양 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안이다. 하나는 한국과 같이 재정상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과, 다른 하나는 미국처럼 국가채무에 시달리는 국가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안이다.
공통적인 것은 두 가지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은 그만큼 민간 부문에서 지출이 위축되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 때문에 부양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미국은 대공황 당시 세 배에 달하던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1.5배 내외로 떨어졌다.
세금을 감면하는 안도 쉽지 않다. 요즘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는 세금 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소비 대신 저축으로 들어감에 따라 경기를 더 위축시키는 ‘구인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효과는 ‘세율이 높으냐’(래퍼 곡선상 세율과 세수 간 부(負)의 관계에 있는 비표준 지역)와는 별개 문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국 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무력화 문제에 직면한 국가가 점차 다른 국가의 힘을 빌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수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올해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 나타난 것처럼 경제 여건에 비해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에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자국의 통화가치는 평가절하를 꾀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과정에서 환율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중국을 환율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 정부는 대폭적인 평가절하로 맞서고 있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 경기부양을 꾀하는 정책은 ‘근린궁핍화 정책’으로 국수주의 조치에 해당한다.
각국의 명암은 어떤가. 현시점에서 재정에 여유가 있고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높거나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는 느긋하다. 대체로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한 국가다. 반면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낮거나 통화가치가 높은 국가는 조급하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국가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정책 여건은 ‘3고(불확실성 만연, 공급 과잉, 과다 부채)’와 ‘3저(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로 대변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구조조정을 추진해 정책무력화 명제에서 자유로운 정도, 즉 ‘완충 능력(buffer capacity)’에 따라 각국의 명암이 엇갈리는 셈이다.
우리는 재정에 여유가 있으나 기준금리는 낮고 원화가치는 고평가돼 있다. 추가 금리인하보다 재정지출을 늘리고 불황형 경상흑자를 줄여야 한다. 지연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해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과제도 급선무다. 유일호·이주열 경제팀은 ‘무능론’에 민감해하기보다 이런 방향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
경기부양 대책으로 각국 중앙은행이 주력해온 통화정책 무용론이 제기된 지는 오래됐다. 경제주체가 미래를 불확실하게 여김에 따라 금리인하와 총수요 간 민감도가 떨어지면서 유동성 함정에 빠져 통화정책 전달경로(통화 공급→금리 인하→총수요 증가→경기 회복)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드는 것은 금리를 추가로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는 국면에 몰리고 있다는 점이다. 테일러 준칙 등을 통해 각국 금리수준을 평가해 보면 대부분 국가의 기준금리는 적정수준에 비해 낮게 나온다. 한국의 기준금리 1.25%도 적정금리 1.8%(존 테일러 교수 추정)보다 낮은 수준이다.
극단적으로 ‘부채 디플레 신드롬’을 이용하기 위해 적정수준보다 훨씬 낮게 기준금리를 떨어뜨려 경기부양을 모색하는 방안(유럽중앙은행과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정책)까지 추진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민간부채 증가 등과 같은 경제주체의 현금흐름상 문제로 또 다른 부작용에 봉착하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 총재의 입지가 약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종전처럼 소신 있는 행동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 때문에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도 중앙은행 총재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통화정책이 무력화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이 주도가 돼 경기부양 수단으로 재정정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안이다. 하나는 한국과 같이 재정상 여유가 있는 국가는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과, 다른 하나는 미국처럼 국가채무에 시달리는 국가는 세금을 감면해 주는 안이다.
공통적인 것은 두 가지 방안 모두 종전에 비해 경기부양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이다. 재정지출을 늘리는 안은 그만큼 민간 부문에서 지출이 위축되는 ‘구축효과(crowding out effect)’ 때문에 부양 효과가 반감되고 있다. 미국은 대공황 당시 세 배에 달하던 재정지출의 승수효과가 1.5배 내외로 떨어졌다.
세금을 감면하는 안도 쉽지 않다. 요즘처럼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는 세금 감면으로 늘어난 가처분소득이 소비 대신 저축으로 들어감에 따라 경기를 더 위축시키는 ‘구인효과(crowding in effect)’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효과는 ‘세율이 높으냐’(래퍼 곡선상 세율과 세수 간 부(負)의 관계에 있는 비표준 지역)와는 별개 문제다.
더 우려되는 것은 자국 내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무력화 문제에 직면한 국가가 점차 다른 국가의 힘을 빌려 경기를 부양하려는 수단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올해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 나타난 것처럼 경제 여건에 비해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에 평가절상을 요구하고 자국의 통화가치는 평가절하를 꾀하려는 움직임이다.
이 과정에서 환율전쟁이 발생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대표적으로 미국은 중국을 환율감시 대상국으로 지정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반면 중국 정부는 대폭적인 평가절하로 맞서고 있다.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해 경기부양을 꾀하는 정책은 ‘근린궁핍화 정책’으로 국수주의 조치에 해당한다.
각국의 명암은 어떤가. 현시점에서 재정에 여유가 있고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높거나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국가는 느긋하다. 대체로 구조조정을 신속히 추진한 국가다. 반면 재정적자에 시달리면서 경제여건에 비해 금리가 낮거나 통화가치가 높은 국가는 조급하다. 구조조정이 지연되는 국가다.
금융위기 이후 경제정책 여건은 ‘3고(불확실성 만연, 공급 과잉, 과다 부채)’와 ‘3저(저성장, 저물가, 저금리)’로 대변된다. 이런 여건에서는 구조조정을 추진해 정책무력화 명제에서 자유로운 정도, 즉 ‘완충 능력(buffer capacity)’에 따라 각국의 명암이 엇갈리는 셈이다.
우리는 재정에 여유가 있으나 기준금리는 낮고 원화가치는 고평가돼 있다. 추가 금리인하보다 재정지출을 늘리고 불황형 경상흑자를 줄여야 한다. 지연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추진해 정책 여력을 확보하는 과제도 급선무다. 유일호·이주열 경제팀은 ‘무능론’에 민감해하기보다 이런 방향으로 대책 마련에 부심하면서 국민의 협조를 구해야 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