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우리 친구하자.” 이번이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른다. 매번 거절당하기 일쑤지만 잊을 만하면 불쑥 얼굴을 내밀어 다시 도전한다. 이제야말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친구신청을 수락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말이다. 자식과 많은 대화를 나누지만 가끔은 또래와 공유하는 아들의 가감 없는 일상이 궁금하기도 하다.

여느 모임에서도 자녀의 SNS는 단연 화제다. 엄마끼리는 수다를 통해 나름의 원칙을 정한다. 일단 자식과 ‘페친(페이스북 친구)’이 되면 보고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게 통상의 규칙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 딸은 계정을 이전하거나 폐쇄하거나, 분명 달아날 게 뻔하다.

부모가 자식을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엄마는 궁여지책으로 자녀의 사회연결망부터 기웃거린다. 그러나 일거수일투족을 담는 SNS에 부모를 초대할 리 만무하다. 감시가 좋다며 방에 폐쇄회로TV(CCTV) 설치하길 동의할 아이는 없다.

치맛바람에서 나아가 요즘은 평생 자녀 주위를 맴돈다는 ‘헬리콥터맘’까지 등장했다. 눈 닿는 곳에 아이를 두고 모든 걸 마음대로 휘두르려는 부모가 많다. 부모가 살아온 길과 자식이 나아갈 길이 다름을 왜 모르는 걸까. 세상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면 세대 간 갈등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채워도 차지 않는 게 내리사랑이라지만, 때로는 이것이 너무 과하지 않나 싶다. 자식을 위한다지만, 꽃길만 걷게 하는 게 능사가 아니다. 잘 가꿔진 길은 지루해 갖은 의욕을 잃게 하고, 각종 변수에 대처할 능력까지 상실하게 한다.

지금의 나는 어떤 엄마일까 자문해본다. 왜 자꾸 잊을까. 30대 중후반, 스스로를 나쁜 엄마라 여겼던 괴로움은 완벽한 양육이 환상인 걸 인정한 뒤에야 비로소 사라졌다. 삶에 ‘완벽’이라는 단어처럼 불완전한 것이 없다.

맞닥뜨리는 고비마다 그에 맞는 균형을 찾아가는 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사랑은 외방향일 때보다 양방향일 때 균형을 갖는다. 일방적인 애정은 어느 한쪽에게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가 부모와 자식 간에도 필요하다. 관계의 여백이 마음의 여유를 만든다. 사이에 공간이 없으면 부딪히기 마련이다. 또 적당히 빈 공간이 있어야 서로 메울 노력을 하며 살지 않겠는가. 오늘부터 여유를 갖고 아들에게 다가서려 한다. 부모가 비워둔 자리보다 조금 가까이, 이제는 자식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면서 ….

박수경 < 듀오정보 대표 ceo@duonet.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