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계 "밥 딜런 노벨상 자격 충분…문학 지평 확장 환영"
문학계 "의미 있는 시도…그러나 노벨상이 절대적 잣대 아냐"

미국 포크록 가수 밥 딜런(75)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두고 세계 문화계가 갑론을박하는 가운데 국내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쏟아졌다.

밥 딜런을 잘 알고 그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음악계 인사들은 딜런의 시적인 가사가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 뛰어나다고 평가하며, 이번 수상이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허무는 패러다임의 혁명을 보여줬다고 환영했다.

문학계에서는 대체로 밥 딜런이라는 뜻밖의 수상자가 나오자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문학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벨위원회의 시도를 인정하고 수긍하는 분위기다.

다만, 문인들은 노벨문학상이 여러 문학상 중 하나일 뿐임을 지적하며, 세계적으로 밥 딜런 못지않게 훌륭한 작가가 많은 만큼 이번 노벨위원회의 결정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경계했다.

◇ "밥 딜런 노래, 어떤 문학작품보다 많이 읽혀"…음악계 대환영
밥 딜런은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한대수, 김민기, 양희은 등 포크 가수들이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는 씨앗을 뿌렸다.

한국 포크록의 대부 한대수는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패러다임을 바꾼 혁명이다.

노벨문학상은 작가 중에 거장이 돼야 받는 보통 상이 아니지 않나.

문학상을 대중음악가가 받은 것은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밥 딜런의 가사는 현대 사회에서 느끼는 고독 등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사랑 노래도 많지만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Just Like A Woman)을 들으면 단순히 '아이 러브 유, 유 러브 미'가 아니라 시적이었다.

'아이 원트 투 홀드 유어 핸드'(I Want To Hold Your Hand·당신의 손을 잡고 싶다)라는 사랑 노래를 만든 비틀스도 밥 딜런을 만난 뒤 후기 음악 가사가 좋아졌다.

밥 딜런 이후 록밴드들이 가사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노벨문학상을 받을 만큼의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또 "밥 딜런이 상을 받은 데는 로큰롤 음악을 하면서 드물게 75세까지 생존했고, 비교적 마약 등 사생활의 스캔들이 없었으며, 자녀들도 잘 키웠다.

그런 로커에 대한 존경심도 더해졌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어 "당시 포크 가수들에게 영향을 줬는데 영어 시가 어렵다 보니 대중에게 파고들진 못했다"며 "밥 딜런의 가사는 매우 미국적인 냄새가 나 쉽지 않다.

한때 라디오 DJ를 10년 넘게 했는데 밥 딜런의 신청곡은 별로 없었다.

거칠고 발음 안 좋은 목소리로 토해내는 영어 시가 한국 정서에는 안 맞았다"고 떠올리기도 했다.

밥 딜런의 음악 중 수작이라 생각하는 곡으로는 '새드 아이드 레이디 오브 더 로랜즈'(Sad Eyed Lady of the Lowlands)와 '저스트 라이크 어 우먼'을 꼽았다.

그러나 그는 30년 전 미국 롱아일랜드에서 본 밥 딜런의 공연을 떠올리며 "사실 성의가 없어 실망했다.

수년 전 한국 공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고 아쉬움을 표시했다.

한국 포크 가수의 대명사인 양희은은 "밥 딜런의 노래는 어떠한 문학작품보다 더 많은 이들이 함께 읽었다고 할 수 있다.

모두 함께 들으며, 마음 모아 따라 부르며, 수억 명의 젊은이가 같이 낭송했다"며 밥 딜런의 수상을 환영했다.

이어 "귀로 듣는 시를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선물한 그에게 노벨문학상이 주어졌다.

스웨덴 한림원의 열린 생각이 부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딜런과 함께한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60년대 후반에 들었던 그의 노래는 마음에 그냥 쏙 들어왔다.

훅훅 집어 던지는 듯한 노랫말과 기타, 뭔가 기성의 것이 다 성에 안 찼던 젊은이들에게 대변자로 다가왔다.

그의 가사를 이해하려고 영어 단어도 찾아가며 따라불렀고 그를 보며 꼭 기타를 배우리라 결심했다.

그로 인해 우리 통기타 부대가 태동했다"고 돌아봤다.

서울예술대학 실용음악과 교수인 싱어송라이터이자 권진원도 "서정적 저항의 언어로 천국의 문을 두드린(Knockin' On Heaven's Door) 경이로운 뮤지션 밥 딜런이 문학의 지평을 넓혔다"며 "문학은 지금껏 시와 소설에 정통성이 있다고 여겼는데 이제 노랫말이 문학의 하나의 장르가 됐다.

음악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 문학계 "밥 딜런이 받을 줄이야…문인들도 자성해야"
문학계에서는 의아해하는 반응이 많다.

문학평론가인 연세대 국문과 정과리 교수는 "노벨상도 일종의 이벤트여서 낡은 것을 계속 유지할 순 없고 그러다 보니 영역이 확대될 거란 예측이 있었다"며 "그러나 밥 딜런이 진짜 받을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그는 이어 "밥 딜런 노래가 워낙 좋으니 시로 인정받을 만하다"면서도 "노벨상이라는 것은 노벨위원회가 주는 것이고 노벨은 대기업을 일군 사람이니 근본적으로는 사설 단체에서 주는 상이다.

그것이 절대적인 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위대한 작가 중에 못 받은 사람도 많으니 그 의미를 크게 생각할 건 아니다.

결국 남는 건 글이고, 100년 후에 안 읽히면 끝난 거다.

노벨문학상 1회 수상자가 누군지 아느냐"고 반문했다.

시인이자 문학동네 출판그룹 계열사인 '난다'의 김민정 대표 역시 "밥 딜런의 노래 가사가 시 같다고 말해왔지만, 문학적으로 보자면 그렇게 시를 쓰는 사람이 많다고도 할 수 있어서 놀랐다.

문학적 완성도를 봤을 때 탈 만한 작가가 많은데, 이런 결정이 나온 게 낯설더라. 노벨문학상이 이렇게 몸을 틀면 받을 사람이 너무 많아지고 넓어지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반면 문인들이 문학의 본질을 돌아보고 고답적인 위치에서 내려와 대중음악처럼 독자와 소통을 넓히려 노력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건설적인 의견도 많다.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아주 의외이긴 하지만, 의미 있는 시도를 했다고 본다.

작년에도 비주류에 속하는 저작활동을 해온 논픽션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줬는데, 이번에 다시 밥 딜런에게 줬다.

통념화된 문학의 범주, 문학이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을 세계인에게 던지면서 문학이 어떤 식으로 존재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했다"고 평했다.

이어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가 거론되는 걸 보면서 스웨덴 한림원이 하루키가 '해변의 카프카' 등에서 보여준, 일본의 전쟁 책임에 대한 애매모호한 기술에 관해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있었는데, 역시 노벨문학상은 중국의 저항문학가인 가오싱젠이나 옐리네크처럼 여성 문제를 다룬 작가에 이어 평화와 반전의 음유시인을 선택했다"고 분석했다.

문학과지성사 주일우 대표 역시 "이런 식으로 문학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시도는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노벨문학상이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고, 이 상을 개인의 영예를 넘어 시가 가진 음악성 같은 것을 회복하자는 메시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인이기도 한 대산문화재단 곽효환 상무는 "문학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고정적 관념과 역할보다 독자, 대중과의 공감을 중요시한 결정이라고 본다.

아무리 텍스트가 고고하다고 해도 독자가 선택을 안 하면 의미가 없다.

밥 딜런이 수상자로 적임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논쟁보다는 기존의 문학적 전통에 충격을 주는 사안인 만큼 시인이나 소설가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임미나 기자 min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