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칼럼] 금융규제는 규정 아닌 원칙 중심이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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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부상 등 급변하는 금융환경
모든 사항 규정에 정해 규제 말고
원칙 세운 뒤 자발적 노력 중점둬야
간다 히데키 <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법학 >
모든 사항 규정에 정해 규제 말고
원칙 세운 뒤 자발적 노력 중점둬야
간다 히데키 <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법학 >
불교 경전 중 하나인 능엄경을 보면 ‘지월(指月)’이라는 말이 있다. 부처님이 제자 아난에게 말한 것으로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본다”는 의미다. 이어서 부처님은 “만약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을 달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달을 잃은 것뿐 아니라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날 고도로 복잡해진 금융규제를 보고 있자면 필자는 늘 불경 속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 또한 수많은 규정으로 이뤄진 복잡한 금융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다. 각 규제의 도입에는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원래의 원칙과 취지는 퇴색되고 규정 자체에만 매몰된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규정 중심의 규제’가 금융·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 방식, 즉 ‘원칙에 의한 규제’를 그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원칙에 의한 규제’는 말 그대로 ‘일반원칙(principle)에 근거한 규제 방식’을 의미하며, ‘규정(rule)에 의한 규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규정에 의한 규제는 상세한 규칙을 제정하고, 이를 개별 사례에 적용시키는 규제 방식을 의미한다. 반면 원칙에 의한 규제는 금융회사가 준수해야 할 주요한 행동규범이나 행동원칙을 ‘원칙’으로 공유한 뒤 각 사가 이를 바탕으로 보다 좋은 경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접근 방식이다.
일본은 과거 심각한 금융시스템 불안 및 부실채권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97년과 1998년 대형 금융회사가 연쇄 파산했고, 그 후에도 오랜 기간 부실채권 문제가 지속됐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본 금융청은 금융회사가 양질의 리스크 관리시스템을 정착시키고 고도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제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금융당국이 “이것을 하라. 이것은 하지 마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육성함으로써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자구노력을 하고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금융청은 이런 판단에 따라 2007년 ‘금융규제의 질적 향상’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네 가지 축 중 하나로서 원칙중심 규제와 규정중심 규제의 최적 조합을 제시했다. 2008년에는 14개 원칙으로 구성된 ‘금융서비스업에 대한 원칙’을 발표했다. 일본은 규정중심 규제와 원칙중심 규제를 양자택일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규제기법이 유효한 분야를 최선의 형태로 조합해 전체로서의 금융규제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금융+기술), 빅데이터 활용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런 금융환경 아래서 모든 사항을 규정에 일일이 정하는 것은 그 후행성으로 인해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금융서비스 이용자 보호에도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금융당국이 일본의 ‘원칙에 의한 규제’에 관한 경험에서 시사점을 얻기 바라며 금융규제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간다 히데키 <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법학 >
오늘날 고도로 복잡해진 금융규제를 보고 있자면 필자는 늘 불경 속 그 이야기가 떠오른다.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일본 또한 수많은 규정으로 이뤄진 복잡한 금융규제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다. 각 규제의 도입에는 물론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금융환경이 변화하면서 원래의 원칙과 취지는 퇴색되고 규정 자체에만 매몰된 경우가 많다.
일본에서는 이 같은 ‘규정 중심의 규제’가 금융·자본시장 경쟁력 강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판단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규제 방식, 즉 ‘원칙에 의한 규제’를 그 대안으로 모색하고 있다. ‘원칙에 의한 규제’는 말 그대로 ‘일반원칙(principle)에 근거한 규제 방식’을 의미하며, ‘규정(rule)에 의한 규제’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규정에 의한 규제는 상세한 규칙을 제정하고, 이를 개별 사례에 적용시키는 규제 방식을 의미한다. 반면 원칙에 의한 규제는 금융회사가 준수해야 할 주요한 행동규범이나 행동원칙을 ‘원칙’으로 공유한 뒤 각 사가 이를 바탕으로 보다 좋은 경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력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접근 방식이다.
일본은 과거 심각한 금융시스템 불안 및 부실채권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 1997년과 1998년 대형 금융회사가 연쇄 파산했고, 그 후에도 오랜 기간 부실채권 문제가 지속됐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본 금융청은 금융회사가 양질의 리스크 관리시스템을 정착시키고 고도화시켜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규제 방식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즉, 금융당국이 “이것을 하라. 이것은 하지 마라”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금융회사가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육성함으로써 자신의 상황에 따라 자구노력을 하고 독창적인 사고방식과 아이디어를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 금융청은 이런 판단에 따라 2007년 ‘금융규제의 질적 향상’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 달성을 위한 네 가지 축 중 하나로서 원칙중심 규제와 규정중심 규제의 최적 조합을 제시했다. 2008년에는 14개 원칙으로 구성된 ‘금융서비스업에 대한 원칙’을 발표했다. 일본은 규정중심 규제와 원칙중심 규제를 양자택일 관계가 아니라 상호보완적 관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규제기법이 유효한 분야를 최선의 형태로 조합해 전체로서의 금융규제 실효성을 제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핀테크(금융+기술), 빅데이터 활용 등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런 금융환경 아래서 모든 사항을 규정에 일일이 정하는 것은 그 후행성으로 인해 금융회사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저해할 뿐 아니라 금융서비스 이용자 보호에도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 금융당국이 일본의 ‘원칙에 의한 규제’에 관한 경험에서 시사점을 얻기 바라며 금융규제의 손가락이 아닌 달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간다 히데키 <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법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