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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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터닝메카드 테이머 챔피언십’ 행사장. 아이들과 함께 이곳을 찾은 배우 이영애 씨가 유튜브 1인 방송 채널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의 진행자 캐리에게 다가왔다. “캐리씨, 방송 잘 보고 있어요. 제 딸이 정말 팬이에요.” 옆에 있던 그의 다섯 살짜리 딸이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자신의 얼굴 사진을 코팅한 뒤 캐리에게 쓴 편지가 들려 있었다. 캐리와 사진을 찍은 아이는 세상을 다 가진 듯 즐거워했다.

요즘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캐리가 없었다면 아이 키우기가 두 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최근에는 ‘캐통령(캐리+대통령)’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매일 새로운 장난감을 꺼내 갖고 노는 게 전부다. 그런데도 누적 조회 수는 10억건을 훌쩍 넘어섰다.

최근 캐리의 일상은 더 바빠졌다. KBS 프로그램 ‘TV유치원’에서 ‘캐리와 냠냠밥상’이라는 코너를 맡았고, 뮤지컬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로 무대에도 선다. 해태제과 ‘꼬마볼’의 모델이 됐고, 애경에선 캐리를 모델로 2080 어린이 치약도 선보였다. 4일 서울 구로동 캐리소프트 스튜디오에서 유튜브 영상 촬영을 준비하고 있는 캐리 강혜진 씨(27)를 만났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친구들’이라고 부르는 그는 방송에서 본 에너지 넘치는 모습 그대로였다.

디즈니 좋아하던 대학생…‘캐통령’ 되다

[人사이드 人터뷰] 강혜진 "장난감 갖고 노는 동영상으로 '캐통령' 별명 얻었죠"
동덕여대 방송연예과를 다니던 강씨는 기업 행사에서 사회(MC)를 보며 용돈을 벌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연기를 배우고 싶어 입학했지만 학과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진로를 결정하지 못한 채 방황하던 중 MC 아르바이트를 할 때 알게 된 권원숙 씨(현 캐리소프트 대표)한테 연락이 왔다. 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토이 언박싱 채널’을 개설할 예정인데 거기서 진행자를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거였다.

“어릴 때 디즈니 시리즈를 모두 외울 정도로 어린이 방송을 좋아했어요. 장난치는 것을 너무 좋아해 ‘정말 아이 같다’는 말을 들을 때도 많아요. 대표님이 저의 그런 모습에서 가능성을 본 거죠.”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다. 2014년 8월 첫 영상을 제작하고, 10월 캐리소프트를 설립했다. 사업은 녹록지 않았다. 3개월간 매출은 고작 17만원. 두 사람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관점이었다. 먼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로 했다. 앉은키를 낮추기 위해 목욕탕 의자에 두툼한 A4용지 뭉치 두 개를 쌓아올린 뒤 앉아서 방송을 했다. 특유의 또랑또랑한 하이 톤 목소리도 방송을 진행하면서 생긴 변화다.

“예전에는 굉장히 진지하고 근엄하게 방송을 했는데 친구들이 댓글로 ‘언니 오늘 아파요?’라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아이들과 함께 있다는 마음으로 더 발랄하고 신 나는 목소리로 방송하게 됐죠.”

매주 서울 동대문 완구거리를 뒤져 직접 장난감을 골랐다. 자신이 사고 싶은 제품이어야 아이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였다.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유튜브 구독자 수는 지난해 6월 10만명, 9월 20만명을 넘어섰다. 방송이 인기를 끌자 여러 장난감회사에서 협찬 제안이 쏟아졌다. 하지만 모두 거절했다. “직접 마트에 가서 ‘이거 재미있겠다’고 생각한 장난감이 아니면 쉽게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지금도 아이들에게 무료로 장난감을 나눠주는 이벤트를 제외하고는 협찬을 받지 않습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케이블TV와 인터넷TV(IPTV)에도 진출했다. 중국 시장에도 나가 하루평균 15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했다. 현재 유튜브 구독자 수는 110만명. 캐리소프트의 올해 예상 매출은 약 40억원이다.

“‘논리’ 대신 ‘아이 눈높이’에서 바라보세요”

아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유아교육과를 나온 것도 아닌 그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 그는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소꿉놀이로 요리를 한다고 생각해 볼까요. 아이들은 소고기 채소 생선을 모두 한 그릇에 넣고 삶아버립니다. 요리의 순서는 중요하지 않아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거죠. 그걸 지켜보던 부모님들은 이렇게 말해요.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순서대로 해야지. 고기를 먼저 삶고, 채소를 넣고, 생선은 따로 오븐에….’ 그렇게 설명하는 순간 아이는 지루해하기 시작하죠.”

늘 ‘기승전결’을 중요시하는 것은 철저히 어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는 “우리 방송이 좀 더 교육적이면 좋겠다는 부모님들 얘기도 이해는 가지만 ‘놀이’에 교육의 목적을 담는 순간 아이들은 순식간에 흥미를 잃는다”고 설명했다. ‘마트 놀이’를 하면서 숫자 개념을 공부하길 바라거나, 만화영화를 보면서 영어 단어를 익히기를 바라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모님들 중에는 남자아이인데 콩순이 인형을 너무 좋아한다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것은 다 한때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공감하고 반응해 줘야 합니다.”

“어린이 환자들 즐거워할 때 힘나요”

인기가 많아진 만큼 그를 비난하는 댓글도 생겼다. “캐리 때문에 아이들이 휴대폰만 들여다보니 꼴도 보기 싫다”거나 “방송을 보고 매일 새로운 장난감을 사 달라고 조른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다.

“‘내가 그렇게도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존재인가’라는 생각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그때 메일 한 통이 왔어요. 뇌병변으로 하체가 굳어서 걷는 게 불편해진 다섯 살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병원에서 받는 재활치료를 고통스러워하는데, 캐리 언니의 동영상을 보면서 치료를 받으니 ‘견딜 만하다’고 했다는 거예요. 회사와 상의해서 그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동영상을 찍고, 대전성모병원에 찾아가기도 했어요. 거기 입원한 아이들이 링거를 꽂은 채 뛰어오는데 정말 눈물이 왈칵 나더라고요.”

“아이가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캐리 언니의 목소리를 들려주면 벌떡 일어날 것 같다”는 어머니의 눈물 어린 전화도 있었다. “가족이 모두 장애를 앓고 있어 아이들과 놀아줄 수가 없어 늘 미안했는데, 캐리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아버지의 편지도 있었다. 그는 “아픈 아이들이 보고 힘을 낼 수 있도록 더 재미있는 영상을 제작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지난 4월 뮤지컬로 제작돼 서울 우리금융아트홀 무대에 올랐다. 캐리와 다양한 장난감 캐릭터들이 출연해 즐거운 놀이극을 펼치는 내용이다.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8월까지 전국을 돌며 투어 공연을 했다. 공연이 없는 월요일엔 TV에 출연하고, 매일 공연을 한 뒤 저녁 때 유튜브 방송을 촬영하는 등 ‘강행군’이었지만 그는 “별로 힘들지 않았다”며 웃었다.

“1000석 규모의 공연을 끝내면 모이는 편지와 선물만 세 상자 정도 됩니다. ‘언니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 주세요’라는 건강 기원부터 ‘언니, 힘들면 쉬었다가 하세요’라는 걱정의 말까지,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정성껏 꾸민 편지를 보면 피로가 사르르 녹아요, 하하.”

아이들의 ‘성원’에 힘입어 뮤지컬 ‘캐리와 장난감 친구들’은 다음달 4~6일 서울 능동 유니버설아트센터 무대에 다시 오른다. 올해 말까지 경기 성남·고양, 강원 춘천·원주, 충북 청주, 대구 등지에서 지방 투어 공연을 한다.

캐리가 ‘친구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공부는 괜찮으니 친구들이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또 하나, 우리는 어린 시절에 종이접기 아저씨나 뽀미언니를 보면서 자란 세대잖아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캐리언니라는 사람이 있었지’라고 기억해준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아요.”

■ 장난감 언박싱 채널이란…

장난감 조립·놀이법 방송
'1인 방송' 상위 5개 중 4개가 어린이 대상 채널


최근 유튜브 1인 방송 중 가장 인기가 높은 것은 장난감 언박싱(unboxing) 채널이다. 유튜브 통계 분석기관인 비드스태트엑스에 따르면 국내 1인 방송 중 누적 조회수 상위 다섯 개 채널 가운데 네 개가 장난감 언박싱, 색점토 만들기 등 유아용 채널이다. 1위인 ‘토이푸딩’은 누적 조회수 30억건을 넘어섰을 정도로 인기다.

방송은 단순하다. 언박싱 채널은 시중에 판매하는 장난감 포장을 뜯어 조립 과정을 보여주거나, 형형색색의 점토를 갖고 놀며 놀이법을 알려준다. ‘스파게티 요리사’ 장난감 박스를 뜯어 조립하고, 점토로 된 국수를 뽑아 요리하는 식이다. ‘킨더 조이’를 뜯어보며 어떤 장난감이 나올지 함께 궁금해하기도 한다. 키덜트족이나 어린아이들이 주로 시청한다.

장난감 언박싱 채널의 인기는 한류 못지않다. ‘토이몬스터’는 해외 시청 비중이 98%가 넘는다. 댓글은 대부분 외국어로 돼 있다. 어린이 방송은 언어와 문화 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해 또봇, 콩순이와 관련한 장난감을 제조하는 완구·콘텐츠기업 영실업은 유튜브에 ‘두근두근 장난감’이라는 언박싱 채널을 열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