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을 겨냥한 제3후보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새누리당에선 친박(친박근혜)계가, 더민주에선 친문(친문재인)계가 당을 장악하자 제3의 지대를 만들어내자는 게 기본적인 방향이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나온다. 김종인 전 더민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와 국민의당의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정계 복귀를 앞둔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제3후보의 한 축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이 제3지대 ‘빅텐트론’을 주장하며 ‘새 한국의 비전’을 창립했고, 새누리당을 탈당한 이재오 전 의원은 ‘늘푸른한국당’을 창당했다.

김 전 대표는 개헌을 고리로 새누리당 친박계와 친문계를 배제하고 제3지대에서 모이자고 주장한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와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유승민 의원,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를 비롯한 새누리당 비박계와 더민주의 김부겸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남지사 등에게 힘을 합치자고 제안했다.

과거에도 제3후보론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을 기반으로 삼았다. 이들은 만만찮은 득표율을 보여주면서 판세를 가르는 요인이 됐지만 매번 청와대행 티켓을 거머쥐는데는 실패했다.

1992년 대선 때 정주영 통일국민당 후보는 16.3%, 박찬종 신정치개혁당 후보는 6.4%를 각각 득표했다. 1997년 이인제 국민신당 후보는 492만여표(19.2%)를 얻었다.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39만여표(1.6%) 차이로 신승을 거둔 것은 이인제 후보가 보수표를 갈랐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당시 이인제 후보가 ‘킹메이커’였다는 평가가 나왔다.

2002년 대선 땐 정몽준 국민통합21 후보가 제3후보로 나서 노무현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이뤘다. 고건 전 국무총리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제3후보로 떠올랐다. 그는 상당기간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기도 했다. 2006년 8월 본격 대선행보를 시작했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 전 총리 기용은 실패한 인사”라고 한 뒤 지지율이 떨어졌고, 이듬해 1월 뜻을 접었다. 당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도 제3후보로 나섰다. 유한킴벌리 사장을 지낸 문 후보는 참신한 경제인 이미지로 출마했으나 득표율 5.8%에 머물렀다.

제3후보들이 대선에서 실패한 것은 한 때의 인기에 편승해 출마했으나 확실한 지역적 지지층이 없고, 기존 정당에 비해 조직력이 약한게 주요 원인이었다. 이념적으로 기존 정당과 뚜렷하게 차별성을 가지지 못한 것도 한 요인이다. 이들의 주요 지지층은 주로 기존 정당에 실망한 무당파 였지만 결집력 면에서 취약성을 드러냈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금의 상황은 예전과 다르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4·13총선에서 지역적 기반이 과거에 비해 약화됐다는 게 드러났고, 국민의당이 선전해 새누리당과 더민주 양당구도에 균열이 생긴 점이 제3지대의 성공가능성을 점치게 하는 요인이다.

한계도 있다. 주도세력이 여러갈래고 이를 묶는 견고한 끈이 없다. 이념과 노선에 기반한 구도도 아니다. 때문에 결집력이 강고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각 정파간 ‘동상이몽’으로 실현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종인 전 대표는 기존 정당을 벗어난 제3지대론을 내세우지만 국민의당은 중도개혁세력과 대권 잠룡들이 모이는 ‘둥지’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어디까지나 국민의당이 주축이 된 ‘제3지대 세력 연대·통합’을 주장하고 있다.

홍영식 선임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