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일본 '히노마루 연합군'은 달랐다
지난 1일 일본 3대 지방은행 지주회사인 메부키파이낸셜그룹이 출범했다. 최근 2년 새 1~3위 일본 지방은행은 모두 합병했거나 합병을 추진 중이다. 지난달에는 편의점업계 3위인 패밀리마트와 4위인 유니그룹홀딩스가 합쳐져 유니·패밀리마트홀딩스가 탄생했다. 불황 속 고령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한 일본 기업들의 생존 몸부림이다.

은행, 유통 등 일본 내수업체는 그냥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해버릴 수 있다. 최근 일본 산업계에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는 ‘히노마루(일장기) 연합군’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한국과 중국 기업을 견제 상대로 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 히타치제작소와 도시바, 미쓰비시중공업은 2017년 봄 원자력 발전용 연료사업 통합을 목표로 한 협상에 들어갔다. 통합으로 생산 거점을 합치고 원자재 조달 비용을 절감하면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 3개사는 세계적인 원자로 업체다. 연료사업을 계기로 원자로 분야까지 통합을 이어갈 공산이 크다. 미쓰비시중공업은 지난 8월 말부터 이마바리조선 등 3개사와 상선사업 제휴도 협의 중이다. 2000년대 한국과의 경쟁에서 밀린 일본 전자업계는 이미 반도체(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 LCD(재팬디스플레이), OLED(J-OLED) 분야에서 연합체제를 구축했다. 대만 훙하이그룹으로 넘어간 샤프까지 재팬디스플레이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사업을 같이 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그런가 하면 도요타 파나소닉 등 8개사는 도쿄대에 인공지능(AI) 인력을 양성하는 기부강좌를 개설했다. 도요타 닛산 등 자동차회사는 자동차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커넥티드카’가 본격 보급될 때에 대비해 자동차를 표적으로 하는 사이버 공격에 공동 대응하기로 했다. 모두 미래산업을 염두에 둔 경쟁사 간 전략적 제휴다.

국중호 요코하마시립대 교수는 “일본 경영학은 경쟁에 앞서 협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경쟁을 해도 상대를 망하게 하진 않는다. 비용을 줄이고 차별화하는 경쟁이다. 치킨게임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처한 상황이 비슷하면 뭉쳐서 타개하려고 한다.

기업지배 구조상 차이도 있다. 한국은 창업주와 그 일가가 경영권을 쥐고 있다. 일본 대기업은 대부분 전문경영인 체제다. 소유권에 집착하지 않고 경쟁업체에 손을 내밀기 쉽다. 과감한 정부 지원도 있다. 한국이 도입한 원샷법(기업활력제고특별법)의 모델은 일본의 산업경쟁력강화법이다. 산업 재편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공급과잉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면 기업에 세제와 금융혜택을 준다. 미쓰비시중공업과 히타치의 화력발전사업 통합은 미쓰비시히타치파워시스템의 출범으로 수월하게 이어졌다.

세계 1~3위를 휩쓴 한국 조선사들은 해외에서 제살깎기식 저가 수주경쟁을 벌이다 위기를 자초한 측면이 있다. 후판대금 지급 문제로 철강 3사와 갈등을 빚고 있는 STX조선해양은 중국 일본 철강사에서 후판을 들여오기로 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히노마루 연합군’은 두렵기도 하지만 냉철하게 배워야 할 ‘서바이벌 전략’이기도 하다.

도쿄=서정환 특파원 ceose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