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뵈케 신임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회장은 “시장의 실패는 시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 차원의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특파원
피터 뵈케 신임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회장은 “시장의 실패는 시장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정부 차원의 문제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특파원
세계 자유주의 시장경제학자들의 축제인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ont Pelerin Society·MPS) 연례총회’가 지난 23일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닷새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세계 40여개국에서 460여명의 학자와 기업인이 모인 이번 총회에서 참가자들은 최근 거세게 불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포퓰리즘(대중인기 영합주의) 등 반(反)시장주의 바람에 맞서 자유시장경제주의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지를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행사 마지막날 총회에서 2년 임기의 차기 회장으로 뽑힌 피터 뵈케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단독 인터뷰에서 “반시장주의와의 전투는 단시간에 승부를 낼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며 “길고 처절한 전투를 위해서는 젊은 경제학자를 대거 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등 각 교육기관에서 시장경제 교육을 강화하고 젊은 경제학자들이 MPS에 참여할 수 있도록 길을 더 확대하겠다”고 덧붙였다. 뵈케 회장은 “그런 의미에서 내년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열리는 서울총회가 큰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세계가 반(反)시장주의 물결에 휩쓸린 엄중한 시기에 회장을 맡았습니다. 어떤 각오입니까.

[월요인터뷰] 피터 뵈케 교수 "힐러리·트럼프 모두 보호무역 내세워…누가 돼도 세계경제 독"
“막중한 책임감을 느낍니다. 개인적으로 회장을 맡으리라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러니 이런 질문에 답할 준비도 당연히 안 돼 있고요.(웃음) 항상 자유주의의 위기에 대해 생각해왔습니다. 미국은 2001년 9·11사태 이후 입국심사를 강화하고 이민규제가 까다로워졌습니다. 세계화와 자유무역, 국가안보 등에 대한 비판적 주장이 강해졌지요. 미국의 경제자유지수 순위는 10년 전 4위에서 지금은 17위로 떨어졌습니다.”

▷미국 대통령선거 후보들이 반시장주의 공약 경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자유주의가 더 훼손되고 있어요. 힐러리 클린턴은 ‘에바 페론’(1940년대 후안 페론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부인. 퍼스트레이디 시절 노동자와 서민을 위해 파격적인 복지정책을 내놓음), 도널드 트럼프는 ‘실비오 베를루스코니’(전 이탈리아 총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 다 시장경제에 독극물 같은 존재입니다. 시장 개입을 당연시하고 자유무역을 반대합니다. 누가 돼도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거예요. 미국의 이런 변화는 세계적으로 큰 리스크가 될 것입니다.”

▷투표할 겁니까.

“(웃으며) 아, 이런 질문은 곤란한데요. 누구도 찍고 싶지 않습니다. (자유당 후보인) 게리 존슨을 찍고 싶은데 지지율이 10%도 되지 않으니 사표가 될 것 같고요. 고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학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요.

“포퓰리즘, 반시장주의와의 싸움은 길고 처절할 것입니다. 단기간 내에 끝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젊은 경제학자들이 더 많이 자유주의 사상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이런 식으로 자유주의의 체력을 보강해야 합니다. 자유주의가 무엇이고, 어떻게 태동했는지, 왜 필요한지 등을 같이 토론하기를 원합니다. 또 세계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 더 많은 토론과 논쟁을 해야 합니다.”

▷단순히 기본적인 토론을 원합니까, 아니면 특정 정책을 놓고 토론하기를 원합니까.

“몽펠르랭 소사이어티는 기본적으로 정책을 논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자유주의 시장주의 자본주의 등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방향성에 대해 공감하고 토론하기를 원합니다. 경제학자들이 공공정책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내고, 해답을 내놓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큰 싸움에서는 왜 자본주의를 지키고, 자유주의 사상을 고양하는지 등을 연구하고 공감하는 사상적인 운동이 더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경제학자뿐 아니라 역사학자 사회학자 법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학자들이 더 많이 자유주의 운동에 참여해야 합니다.”

▷총회에서 자유주의 경제사상을 교육할 기반이 안 돼 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뼈아픈 지적입니다. 미국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 중에 애덤 스미스나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등을 아는 학생이 거의 없습니다. 계량적 경제학보다 역사와 사상을 가르치는 정성적 경제학을 더 많이 교육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더 확고한 교육을 받을 수 있을까요.

“어떻게 이를 현실화할지는 연구가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우선 역사교육을 더 강화해야 합니다. 자본주의 형성 과정이나 자유주의 사상이 체계화하는 과정 등을 더 교육해야겠지요. 이런 부문에 대한 연구실적도 쌓여야 할 것 같고요. 많은 사람이 자유사회를 지지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것을 만들고 지켜낼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연구가 안 돼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조금만 경제가 어려워져도 반시장주의로 방향이 돌아가는 겁니다.”

▷시장의 실패가 사람들을 자유주의와 시장경쟁에서 등을 돌리게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시장의 실패는 시장 자체 문제라기보다는 정부 차원의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정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자유로운 경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경우입니다. 경쟁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경쟁을 내부화하기 때문에 경쟁이 훼손됩니다. 시장이 문제가 아니라 법, 특히 정부 차원의 문제입니다. 학생들에게 종종 “칠판을 보지 말고 창밖을 보라”고 강조합니다. 경제역사를 제대로 배워서 진짜 시장이 무엇이고, 그것의 장점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게 중요합니다.”

▷시장경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제임스 가트니 플로리다대 교수가 고안한 ‘경제자유도지수’가 훌륭한 지표입니다. 많은 학자와 기관, 정부가 이를 인용하고 있지요. 경제자유도지수는 국가별 재산권의 보호와 계약의 자유, 가격의 자유로운 책정, 건전한 통화, 재정 책임, 자유무역도 등을 측정해 지수화하고 순위를 매깁니다. 모든 요소가 번영을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이것들과 반대되는 정책을 가지고 번영을 이룬 나라, 소위 ‘유니콘’(신화에 나오는 뿔 달린 말)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이 번영으로 가기 위해 이런 요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배제하고 민주적 선거과정을 통해 이를 지켜내는 나라는 드물지요.”

▷내년 서울총회에서 이런 점을 더 많이 부각해야 하겠군요.

“서울총회 개최 계획을 소개했는데 ‘경제자유: 번영으로의 길(road to prosperity)’이라는 주제가 아주 시의적절하고 좋습니다. 반자유무역, 반이민 등 고립주의화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며 이의 해법으로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자유가 왜 필요하고 이를 어떻게 실현할지 등을 집중 논의했으면 좋겠습니다. 마침 내년은 MPS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국제적 자유질서, 평화, 자유무역 등의 가치가 70주년을 맞아 다시 주목받고 공감되는 행사가 됐으면 합니다. 이런 부문에 확고한 철학을 가진 버논 스미스(200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뉴욕대 동료인 이스라엘 커스너 등 훌륭한 경제학자들이 많이 참석하니 기대가 됩니다.”

▷경제학만큼 운동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농구를 아주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잘하기도 했어요. 그렇게 안 보이죠?(웃음) 둘째 아들이 농구 코치입니다. 야구도 정말 좋아합니다. 뉴욕 양키스 팬입니다. 골프는 잘하진 못하지만 정말 좋아합니다. 운동을 좋아하는 만큼 경제학을 좋아한다고 얘기하면 이상한가요?”(웃음)

피터 뵈케는

오스트리아 학파 경제학자. 1960년 미국 뉴저지주 로웨이 출생으로, 몽펠르랭 소사이어티 내에서는 ‘소장파 리더’로 통한다. 글로브시티칼리지에서 독일계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자인 한스 센홀츠에게 경제학을 배웠고, 경제학 석·박사 학위 때도 단 러보이 조지메이슨대 교수(오스트리아학파)의 지도를 받았다. 이때 ‘공공선택이론’으로 1986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뷰캐넌 교수의 영향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모교인 조지메이슨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제임스뷰캐넌정치경제센터 부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몽펠르랭 소사이어티(MPS)

1947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루트비히 폰 미제스 등과 함께 전체주의와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주의 경제 이념을 연구·전파하기 위해 설립한 단체다. 하이에크를 비롯해 밀턴 프리드먼, 조지프 스티글러, 제임스 뷰캐넌, 로널드 코즈, 버논 스미스, 게리 베커, 모리스 알레 등 회원 여덟 명이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회원은 60개국 700명 정도다. 내년 총회는 한국경제신문사 주최로 ‘경제적 자유: 번영으로 가는 길’을 주제로 서울에서 열린다.

마이애미=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