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마늘 맛
“야, 보리밭이다. 끝이 없네.” 독자들과 함께 남해로 봄 문학기행을 갈 때마다 듣는 소리다. 해풍에 일렁이는 마늘밭이 청보리밭처럼 보이긴 한다. 그래서 ‘남해 마늘’이라는 시의 도입부를 ‘보리밭인 줄 알았지/ 하늘거리는 몸짓/ 그 연하디연한 허리 아래/ 매운 뿌리 뻗는 줄 모르고/ 어릴 적엔 푸르게 보이는 게/ 다 보리인 줄 알았지’로 시작했다고 설명하면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마늘은 크게 남부의 난지형(暖地型)과 중부의 한지형(寒地型)으로 나눈다. 국내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난지형은 8~9월에 심어 5~6월 초에 수확한다. 3~4월엔 어린 마늘싹과 풋마늘, 마늘종을 뽑아 별미로 즐긴다. 주산지는 남해와 고흥이다. 한지형은 9~10월에 파종해 6월 중하순에 거두는데, 서산·의성·삼척·단양 등에서 재배한다.

마늘은 강한 냄새만 빼면 모든 게 이롭다고 해서 예부터 일해백리(一害百利)로 불렸다. 강장제로 쓰인 것은 고대 이집트 시대부터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2500년 피라미드 벽면 상형문자에 노동자들에게 마늘을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마늘의 매운맛과 강한 냄새는 알리신에서 나온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마늘을 세계 10대 건강식품으로 분류하면서 알리신이 페니실린보다 더 강하다고 소개했다.

미국 국립암연구소가 추천한 첫 번째 항암 식품도 마늘이다. 항암 기능을 가진 게르마늄이 알로에의 10배나 된다. 살균·항균 작용이 뛰어나 식중독균을 죽이고 위궤양을 유발하는 헬리코박터균까지 없앤다. ‘주방의 약방’이라 불릴 만하다. 마늘은 비린내를 없애고 음식 맛을 좋게 하는 데다 식욕도 돋운다. 하루에 생마늘이나 익힌 마늘 한 쪽 정도를 꾸준히 먹으면 건강에 좋다고 한다. 마늘 냄새를 없애는 데에는 된장국이나 우유, 녹차, 재스민차, 허브차 등이 효과적이다.

1인당 마늘 소비량 1위는 단연 한국이다. 연간 세계 평균량(0.8㎏)의 아홉 배인 약 7㎏을 소비한다. 올해 생산량이 30만t에 가깝지만 5만t 정도는 부족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들어선 수입 마늘을 쓰는 식당이 많아졌다. 수입 마늘은 매운맛이 너무 강하고 식감도 거칠다. 알싸하고 둥근 맛 대신 맵싸하고 아린 맛이 더하다. 톡 쏘는 느낌에 단침까지 은은하게 고이는 국산 마늘 맛과 비교하면 급이 뚝 떨어진다.

알알한 신미(辛味)에 감칠맛 나는 당도(糖度)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것이 우리 마늘의 진짜 맛이다. 아, 삼겹살에 소주 한잔, 상추쌈과 함께 먹는 생마늘의 아삭하면서도 달큰한 그 미감이라니!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